최근 삼성생명의 한 여성 고객이 1,000만원 넘는 보험금을 신청했다. 하루 날 잡고 하면 좋을 치조골(잇몸뼈) 이식수술을 각기 다른 날 5번에 걸쳐 했다면서 치료비를 청구한 것이다. 관련 서류는 삼성생명 특별조사팀(SIUㆍSpecial Investigation Unit) 권혜정(34) 과장에게 넘겨졌다. 그는 6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다 2007년 5월 SIU에 합류했다. 고객의 X레이 필름을 예리하게 훑던 권 과장의 입가에 순간 미소가 어렸다. 5장의 치조골 사진에 나온 고객의 귀걸이가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이식수술을 한 번 했으면서 다섯 번으로 속인 것이다. "사진마다 같은 귀걸이가 찍혀 있는 걸 발견하고 환자가 의사랑 짜고 친 보험사기인 걸 밝혀낼 수 있었죠."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전직 경찰관 2명과 간호사 1명이 속해 있는 삼성생명 SIU 팀원들이 모여 최근 성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보험사기를 색출하는 조직인 SIU는 2002년 6명으로 시작해 현재 24명의 대식구가 됐다. 작년 11월엔 인구 5만명의 소도시 강원 태백에서 3개 병원과 전ㆍ현직 보험설계사 72명, 가짜 환자 331명이 짜고서 150억원대 보험금과 건강보험급여를 챙긴 대형 사기극을 적발했다.
20년간 경찰에서 형사로 활동하다 2008년 7월 입사한 우영창(48) 차장은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제보가 들어오거나 자체 조사를 통해 보험사기 추적에 들어간다"며 "수사권만 없다 뿐이지 경찰과 하는 일이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베테랑 형사와 간호사, 의사 등 전문인력이 삼성생명 등 주요 보험사 SIU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 및 손보사의 보험사기 특별조사팀(SIU) 인원은 총 400여명. 이 중 형사 출신은 250여명으로 전체의 62.5%에 이른다. 간호사와 의사 등 의료인 출신은 10명 안팎으로 아직 소수지만, 업체마다 충원계획을 세우고 있어 올해부터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올해 경찰과 의료인 출신을 중심으로 SIU 인력을 400명 정도 더 확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보험범죄가 날로 교묘해지는 현실과 궤를 같이 한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보험 고객이 병원, 정비업체 등과 짜고 치료비를 허위 청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금을 타내려 멀쩡히 살아있는 아내가 죽었다고 속이거나 장사가 안 되는 가게 주인이 보험에 가입한 뒤 방화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과거엔 보험상품에 무조건 많이 가입하는 유형이 많았다면, 지금은 보험사와 상품을 분석해 재해 또는 질병만 집중 보상하는 특화 상품에 가입한 뒤 이를 악용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인들의 도덕불감증도 같은 업종의 전문가들을 SIU로 불러들이는 데 한몫 했다. 간호사 출신인 권혜정 과장은 "경영난이 심각한 탓인지 환자들의 보험상품 약관을 분석해 어떻게 하면 보험금을 많이 타낼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병원도 있다"며 "친정 식구 같은 의사나 간호사가 보험사기에 연루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능범죄에 가담한 전문가들을 그들의 동료가 잡아내는 슬픈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SIU는 검찰 경찰과 함께 전국을 돌며 보험사기 적발 활동을 벌이지만, 조사권이 없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보험 업계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SIU에 어느 정도 조사권을 부여하고, 형법에 보험사기 처벌조항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의 경우 형법 제347조(사기)에 근거해 처벌하지만 상당수가 집행유예와 벌금형 등으로 풀려난다"며 "다른 범죄에 비해 처벌이 가볍다 보니 재범률도 높다"고 지적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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