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금융)과 경제(농축산물 유통)로 나뉜 2개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된 농협이 첫걸음부터 낙하산 시비에 휘말렸다. 농협금융지주 및 계열사 신임 임원에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임명된 것이다. 지난해 금감원 부원장으로 퇴직한 인사는 금융지주 사외이사가 됐고, 금감원 국장을 역임한 다른 인사는 농협은행 상임 감사위원직을 꿰찼다. 농협생명 상근감사 자리를 차지한 인사도 금감원 보험조사실장을 지냈다고 한다.
농협은 "선진 금융기법을 잘 알고 검사 경험도 있는 금감원 출신을 삼고초려로 모셔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외이사나 감사 업무의 특성상 금융감독 실무에 정통한 인사를 영입하는 건 당연하며, 단지 금감원 출신이라고 배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하지만 불과 2주 전 금감원 스스로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전ㆍ현직 모두 금융회사 감사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야 했을 정도로 금융권 민ㆍ관 유착의 폐해가 심각한 만큼 이번 인사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금융ㆍ감독 당국에서 장기간 축적된 실무경험이 귀중한 자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능력이 민ㆍ관 유착 구도 속에서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지키기보다 오히려 각종 탈법과 비리를 저지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데 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저축은행 비리에 금감원 출신 낙하산 인사들이 직ㆍ간접으로 가담한 사실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는 게 그런 부작용의 단적인 예다.
금융ㆍ감독 당국 출신 인사들의 금융사 재취업이 부패사슬화 하는 걸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후 2년이 지나야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 공직자의 금융사 재취업을 아예 막을 수 없다면, 비리와 관련된 사외이사나 감사의 민ㆍ형사 책임과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사 정관 등을 엄정하게 손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인사 파문은 새 출발의 각오가 부족한 농협과 낙하산 인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금감원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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