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강진과 그에 따른 최고 높이 40m의 쓰나미, 그리고 그 쓰나미의 여파로 일어난 원전사고는 이제껏 인류가 경험한 가장 가혹한 재앙 중 하나였다.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바닷가 마을에서는 1만9,0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무려 17조엔(약 238조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재로 꼽히는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도 쓰나미에서 비롯됐다. ★관련기사 4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대형 재앙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지 1년. 하지만 마냥 손을 놓은 채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은 아니었다. 더디기는 하지만 복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타지로 떠났던 사람들도 하나 둘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 같이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은 상징적 존재가 바로 ‘기적의 소나무’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 다카타마쓰바라(高田松原) 해안가에 홀로 서있는 이 외로운 소나무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지난 1년간 일본 열도에 전했다.
처리 작업을 완료하지 못해 아직도 수십 미터 높이로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넘어 겨우 리쿠젠타카타 해안에 도착했을 때 마침 마을 주민 간노 미쓰히코(菅野光彦ㆍ73)씨가 소나무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가 소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며 경건하게 두 손 모아 머리를 숙인 배경은 이랬다. 이곳에는 500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방풍림으로 조성한 소나무 7만여 그루가 1㎞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하얀 백사장과 어울린 송림은 일본 100경 중 하나로 손꼽혔다. 하지만 1년 전 악몽 같은 쓰나미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갈 때 수백년 된 소나무들도 뿌리째 뽑혀 나갔다. 밀려온 파도에 마을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주민 1,700여명도 목숨을 잃었다.
그 와중에 270년간 이곳을 지키던 높이 30m의 소나무 한 그루가 살아 남았다. 쓰나미를 이겨낸 소나무의 생존 스토리는 ‘기적의 소나무’라는 제목으로 일본 열도로 퍼졌고 재해 더미 속에서 재기의 의욕을 다지는 희망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기적의 소나무’라고 해서 그 운명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쓰나미의 위력에는 버텨냈지만 지반이 침하하고 바닷물에 침수하면서 뿌리가 썩기 시작한 것이다. 소나무를 관리하던 일본녹화센터는 소나무 살리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지난해 12월 보호관리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무서운 쓰나미를 견딘 소나무가 결국 스러지게 됐다는 소식에 일본 열도는 다시 절망했지만 곧 또 다른 기적의 소식이 전해졌다. ‘기적의 소나무’에 남아있던 솔방울에서 씨앗을 채취한 스미토모임업이 모종 양육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켄타(中村健太) 수석연구원은 “모종 18개가 4㎝ 정도 성장했다”며 “온실에서 저온처리를 통해 소나무를 키울 계획인데 10년 후 50㎝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적의 소나무’는 이제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지만, 후손들을 통해 더 많은 희망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기적의 소나무’ 후손들이 언젠가 리쿠젠타카타 해안을 뒤덮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기적의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일본녹화센터는 소나무 속에 방부제를 넣어 영구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적의 소나무’는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는데 센다이(仙台)에서 직장을 다니는 후지와라 준이치(藤原順一ㆍ33)는 그 질긴 생명력에서 감동을 받아 ‘기적의 소나무’를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주 소나무를 찾아와 그때 그때의 상태를 영상으로 담는 것이다. 후지와라 준이치씨는 “일본인에게 희망을 전해주던 소나무가 고사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뒤 안타까운 마음에 소나무를 찾기 시작했다”며 “후세에게 ‘기적의 소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쿠젠타카타(일본)=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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