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평로 2가,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시장 초입엔 세 가지의 삶과 죽음이 형상화되어 있다. 로댕의 조각인 죽음을 앞둔 '칼레의 시민'과 사후 세계를 형상화한 '지옥의 문'. 그리고 1일 전시를 개막한 배영환(43)씨의 신작 '황금의 링_아름다운 지옥'이다. 번쩍이는 황금으로 복서를 유인하는 그곳에서 누군가는 승리하고 실패한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우며 상처를 주고 받는 현대 도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배씨는 "도시의 화려함은 황금처럼 사람을 유혹하지만 그 속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끔찍한 투쟁에 중독되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의 예술 여정 15년을 아우르는 개인전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는 그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없다"는 그는 깨진 술병과 알약, 약솜, 본드 등 하위문화적 재료로 흘러간 유행가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얀색의 거담제 알약으로 산울림의 노래 '청춘'을 써 내려간 작품은 1970,80년대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약으로 지친 몸을 다스리듯, 유행가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랬음을 보여준다.
영화 '하녀'의 상류층 대저택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로 회자되었던 작품 '불면증-디오니소스의 노래'는 알려진 대로 깨진 맥주병과 소주병을 재료로 사용했다. 기타 시리즈 '남자의 길'의 작품들 역시 골목길을 누비며 찾아낸 버려진 재봉틀과 자개농을 분해해 만들었다. 그는 이들 재료가 '버려진' 것이 아닌, 우리가 '공유하는' 물건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술병이 삶의 고단함을 떠올리고, 가구는 생활의 일부이듯이.
배씨는 2010년부터 재료의 다변화를 시도 중이다. 자신의 뇌파에서 산수화를 목격한 그는 마음의 산맥을 도자기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흙으로 한번에 작은 산맥 형상을 만드는 것으로, '스스로 성스러운'이란 뜻의 '오토누미아' 시리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성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유행가에는 개개인의 추억이 담기지만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비발디의 '사계'가 아무 데나 쓰이며 제 가치를 잃는 것과 같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그 때문에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전시의 대미는 '걱정-서울 오후 5시 30분'이 장식한다. 하얀 색의 텅 빈 공간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작품으로, 국내 30여곳 사찰의 종소리를 한데 모았다. 바닥을 둥글게 파놓아, 관람객들이 자신의 걱정을 쪽지에 적어 넣으면 종소리와 함께 날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는 5월 20일까지. 1577-7595.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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