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전(萬神殿)이라고 할까. 미국 인도 등 10여개국에서 가져온 50여점의 신상(神像)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이슬람, 불교, 힌두, 기독교 등 이질적인 종교의 상징물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신성의 위엄은 희석되었다. 단지 조각이나 공예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29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갤러리에서 열리는 현대미술가 김기라의 개인전 '공동선: 모든 산에 오르라!'의 전시장 풍경이다.
"종교가 추구한다는 공동선은 허구"라고 말하는 김씨는 "신화나 종교는 인간이 공동선 추구를 위해 고안했지만 오히려 인간을 제약하고 욕망을 부추긴다"고 했다. 일그러진 종교와 인간의 욕망은 그의 신작 '스펙터'(specter), 즉 '망령'(亡靈) 시리즈에 잘 드러난다.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500권 이상의 역사, 인류사, 신화 서적에서 모은 세계의 신들의 형상을 콜라주하고 드로잉한 작품이다.
콜라주엔 그리스 여신과 부처의 얼굴이 반씩 섞이고 물고기나 뱀 같은 동물신의 형상이 몸에 가 붙었다. 드로잉 역시 여러 개의 얼굴과 팔 다리가 붙은 흐물흐물한 형체다. 추악한 신들의 형상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집적된 오늘날 종교를 은유하고 있다. (02)708-5015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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