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은 정신과 의사지만 등의 저서를 통해 정신세계를 현실세계로 끌어내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는 소통을 중시한다. 그의 도 소통을 강조한다.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우울증도 소통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광장을 얘기한다. 도시의 삶은 외롭지만 광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촛불시위나 붉은 악마의 응원에 현대인들은 익명으로 광장에 들어간다. 누가 들어왔다 나갔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광장에서 집단의 응집성을 경험하고 충전해서 돌아간다. 이게 광장의 역할이다. 그는 '바보들의 행진' 등을 제작했던 천재 영화감독 하길종의 아들이다. 그를 만나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우울증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우울증이 심각하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질환 실태조사 전문을 보니 흥미롭다. 유병률이 25%이상 됐다. 4명에 1명이다. 유럽이 25%다. 중국, 나이지리아 등은 13% 수준이다. 이것은 첫째 우리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률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우리 사회구조가 육체노동이나 농경보다는 멘탈 관련 일 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4명에 1명(흡연자 제외)이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등이 있다. 가장 많은 것은 알코올 중독이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사람은 여전히 15%수준으로 서양은 40%다. 유병률은 올라갔는데 치료는 여전히 받지 않는 게 문제다. 환자는 두 부류다. 질환이 있는데 없다고 인정받고 싶은 부류와 버티다가 힘들어서 병원을 찾는 부류다. 다들 사석에서는 문제를 인정하지만 병원에는 오지 않는다. 웃으면서 얘기하다가도 정색을 하면 무서워한다.
-최근 들어 심해진 건가.
저소득층에서 우울증 유병률이 매우 높다. 국민생활기초보장자는 의료급여 등 혜택이 있다. 그런데 차상위계층은 혜택이 없어서 더 문제다. 우울증 원인을 소득격차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일정수준 이상 벌어지면 그 과정에서 개인이 겪는 심적 고통이 커진다. 버트런드 러셀은 '거지는 부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조금 나은 거지를 보고 화를 낸다'고 했다. 비교의 문제로 상대적 박탈감이 핵심이다. 이것이 심적고통, 스트레스에 더욱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요즘은 고학력여성 우울증도 많다. 워킹맘도 그렇다. 스스로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과 죄책감 때문이다. 요즘은 전업주부도 80%이상이 대졸자다. 자아 성찰을 애들 키우는 것으로 정한 것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해결방법이 있나.
인정하고 적극 치료하면 좋아진다. 편견이 문제고 미디어역할이 크다. 몇 년 전에 한 일간지에 작은 단신이 나왔다. 진료기록에 'F코드'가 있으면 취업이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F코드는 정신과 코드라고 보면 된다. 네이버 등에 괴담이 돌았다. '대기업에서 내 진료기록을 다 보는데 그 기록 때문에 취업이 안됐다'는 것이다. 취업에 떨어진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올린다. 하지만 실제 남의 진료기록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털 1면에 나오면서 사람들이 진짜로 믿어버렸다. 취업도 안되고 보험도 안된다는 식이다. 편견이 사실처럼 되는 것이 문제다.
-자살도 많다.
우스갯소리로 정신과 의사와 다른 의사의 차이가 뭐냐는 퀴즈를 낼 때가 있다. 답은 일반 병원은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고 정신과는 '나는 죽고 싶다'다. 인간은 생명을 스스로 끊는 유일한 생명체다. 일부 철학자들은 '왜 자살을 죄악이라고 생각하나.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결정인데' 라는 입장이다. 또 일본처럼 철학적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곳이 있기도 하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하나의 선택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에게 '자살로 얻는 게 뭔가'라고 물어본다. 어떤 사람은 지나친 죄의식 때문에 스스로 사형선고를 한다. 노인 자살도 많다. 할머니 기일 등에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만나고 싶다'며 몸을 던진다. 통증, 괴로움, 만성질환도 원인이다. 또 너무 인생이 엉켜있어서 컴퓨터를 리셋 하듯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사람, '내가 죽으면 네가 미안해하겠지' 라는 복수심도 있다.
-자살이 왜 늘어나나.
자살사건이 알려지면서 하나의 옵션으로 머리에 박힌 것 같다. 최진실, 이은주가 죽은 다음에 상담한 환자들은 ''최진실처럼 얼굴 예쁘고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죽는데 나는 왜 살아야 되나'라고 묻는다. 굉장히 깔끔하고 확실하게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자살'이라는 옵션을 생각한다. 사회적 압력이 점차 커지기 때문에 압력에서 튕겨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생각한다. 자살하거나 시도한 사람들의 75~90%가 하나 이상의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심리적 부검'을 한다. 마치 과학수사 드라마에서 부검하는 것과 같다. 예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가족,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등을 보면서 진단한다. 대개 70% 정도는 우울증이고 약물이나 알코올이 두 번째다. 우울증 환자 중에 치료를 제대로 받은 사람은 3분의 1 밖에 안된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치료를 받으면 재발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진다. 우리 병원 응급실에도 자살 시도자가 일주일에 5~6명 온다. 한강다리가 가깝고 모텔이 근처에 많다. 이들 중 90% 이상은 정신치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간다. 위세척만 하거나 상처를 꿰매고 만다. 대부분 가족들이 '우리 애는 이럴 애가 아니다', '취해서 그런 거다', '일시적으로 그런 거다' 라고 부정한다. 그런데 자살시도를 한 번 해봤던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이런 사람들을 강력히 치료하거나 모니터링 해야 하지만 이들이 창피하게 생각해 거절하는 게 문제다.
-동창회 친목회 등 온갖 모임을 하지만 외로움은 극복되지 않는 것 같다.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요하게 보는 게 '우리'라는 단어다. 우리가 되느냐 안되느냐가 중요한 차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어떤 식으로든 엮으려고 한다. 학연 혈연 지연 등. 리처드 니스벳의 라는 책을 보면 동양인과 서양인의 문화적 차이가 나온다. 동양인은 내가 속해있는 집단 안에 들어가야 편안하게 생각하지만 집단과 집단 사이의 심리적 간격은 넓다. 반면 서양사람들은 내가 특정 집단에 속해있더라도 독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이 상대적으로 가깝다. 두 번째는 그런 의식이 점차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파편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1인 독립가구가 250만 가구다. 4명 중 한 명은 혼자 살고 있다. 독거노인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도 그렇다. 쿨하게 말하면 독립적이고 남이 간섭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동시에 어디에 속해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들고 커넥션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측면들이 강해진다. 나의 삶이 파편화하기 때문에 언제든 떨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커넥션이 돼 줄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광장문화가 쉽게 생성됐다. 전통적인 정자문화와는 다른 문화다. 예전에는 동네 마을 어귀 정자에 사람들이 모여서 논다. 정자를 지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알고 어디 가는지도 물어본다. 하지만 도시의 삶은 외롭다. 가끔은 '내가 생각하는 게 맞나'고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데 그 때 광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나도 나꼼수 지지한다' 라고 외친다거나, '붉은 악마'가 돼서 응원한다. 익명성을 가지고 광장에 들어간다. 누가 들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광장에서 집단의 응집성을 경험하고 충전을 해서 돌아간다. 이게 광장의 역할이다.
-외로움은 계속 되는 건가.
외로움은 숙명이다. 그래서 혼자임을 즐길 수 있고 혼자일 때도 불안해 하지 않으면서 자기 세계 속에서 원하는 것들을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 누구와 함께 있다고 외로움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책 2권, 논문을 쓰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약속은 가지만 어떨 땐 못 간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나는 외로워진다.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은 '넌 아쉬울 때만 손 벌려' 라고 할 것이다. 그럼 난 미안해한다. 그게 무서우면 책이나 논문도 못쓴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서 책보고 생각하고 내공을 키워 사람을 끌어당긴다면 오히려 외로움이 해결될 수 있다. 경험상 CEO등 리더들은 굉장히 외로워 한다. 이분들은 (의사인) 나를 만날 때가 편하다고 한다. 자신에게 부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서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 한잔 마셔도 끝이 날 때 쯤 쭈뼛쭈뼛 부탁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속상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술접대가 끝나면 혼자서 다른 술집을 찾는다. 유일하게 맘 편하게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가족들도 '뭐 해주세요'라고만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영역과 정신분석학의 영역이 접근하는 것 같다.
심리학의 분야 안에 정신분석학이 있다. 정신치료와 심리치료의 차이는 처방권의 유무다. 심리치료 분야에서 도움 받을 사람이 1,000명이면 정신과 의사가 도와줄 사람들은 100~200명이다. 교회나 점집을 가거나 수다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람들도 있다.
-아버지(고 하길종 감독)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굉장히 자유로운 분이었다. 집에서 항상 책 보고 글을 쓰셨다. 영화감독이자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 감독과 교수였다. 시나리오 쓰는 게 일이었다. 어머니(전채린 전 충북대 불문과 교수)도 글을 쓰셨으니 여름방학만 되면 바닷가에 한 달씩 민박집에서 기거했다. 난 그 동네 아이들이랑 친구가 되어 놀러 다녔던 기억이 가장 많다.
-아버님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슬프지 않았나.
슬프다는 생각이 들 경황이 없었다. 정신이 없었다. 영화 개봉 중에 뇌졸중이 와서 중환자실에 갔다. 술 드시다 잠든 줄 알고 친구들이 자리를 떴는데 나중에 못 깨어났다. 뇌졸중인줄 알았으면 병원으로 갔으면 되는 건데. 작은 아버지(하명중 영화감독)가 안타까워 하는 게 그런 부분이다. 돌이켜보니 그때 너무 허술하게 대처했다.
-힘들건 없었나.
어머니가 안정적이셨고 나도 뭐 크게 사고를 치고 살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은퇴하셨다. 마지막으로 충북대에서 불문과 교수를 하셨다. 건강하시고 평생 선생님하던 분이라 꼼꼼하고 성실하다.
-영화는 관심 없나.
좋아한다. 어릴때부터 상대적으로 남들이 못보는 것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집에 책이 많았기 때문에 어른들 보는 책도 많이 봤다. 대학 때는 문화운동 쪽에 관심이 많아서 민요, 풍물 동아리 활동하다가 3학년 때 본과 올라간 다음부터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영화보다는 연출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대통령선거 때 풍물패와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유세도 했다. 그 다음에는 희곡을 썼다. 희곡으로 대학문학상도 받았고 이화여대에서 공연도 했었다. 3~4개 정도 썼다.
● 하지현은 누구
196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와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2006년부터 건국대 의대 교수로 있다.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저서와 역서로 <통쾌한 비즈니스 심리학> <전래동화 속의 비밀코드> <도시심리학> <심야 치유 식당>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등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심야> 도시심리학> 전래동화> 통쾌한>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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