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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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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입력
2012.03.0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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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마리 새끼 돼지/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김명남 옮김

/현암사 발행·700쪽·2만8,000원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이철우 옮김

/아카넷 발행·316쪽·2만원

"찰스 다윈의 생각은 틀렸다."

'19세기 최고의 지적 혁명가'도 그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하버드대 지질학 및 동물학과 교수를 지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이 몇 가지 오류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폐와 부레(공기주머니)의 진화에 관한 얘기다. 다윈은 폐가 부레에서 발생했다고 여겼다. 그의 논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폐와 어류의 부레는 비슷한 기관이다. 육상 척추동물은 어류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폐는 부레에서 진화했다.

굴드는 다윈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거꾸로 폐에서 부레가 나왔다는 것이다. 척추동물의 진화가 일정 순서(어류→양서류→파충류→포유류→원숭이→인간)대로만 일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체 어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경골어류는 모두 부레를 갖고 있다. 하지만 굴드에 따르면 경골어류가 바다에 생겨난 건 포유류가 육지에서 진화하기 시작한 시점보다 한참 뒤다. 더욱이 최초의 수중 척추동물은 물속에선 아가미로, 수면에선 폐로 호흡했다. 이들은 부레를 갖고 있지 않았다.

굴드는 1972년 '단속평형설'을 발표해 다윈주의자를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이론은 동식물의 진화가 점진적이지 않고 갑자기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약 5억5,000만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후 갑작스레 등장한 다세포 생물이 좋은 예다. 진화론을 수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이 이론은, 그러나 당시만 해도 파격이었다. 그때 학계에서 생각한 진화는 동식물이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누진적인 변화에 그쳤다.

굴드의 10주기를 맞아 이러한 그의 날선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 두 권이 번역돼 나왔다. 굴드는 2002년 5월 암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22권의 저서, 101편의 서평, 300여편의 에세이, 497편의 논문을 남겼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란 칭송은 괜한 말이 아니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는 굴드가 과학학술지인 <내추럴 히스토리> 에 1974~2001년 연재한 에세이 300여편을 묶어 낸 10권의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으로, 1993년 발간됐다. 여기엔 31편의 글이 담겼다.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은 시간을 생각하는 인류 인식의 변화가 지질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풀어놓은 책이다. 진화생물학 외에도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던 굴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교과서처럼 딱딱하진 않다. 진화라는 중심뼈대 위에 자신의 경험, 공상과학(SF), 야구, 피아노 연주 등 다양한 양념을 맛깔나게 버무린 덕이다.

굴드는 사회 활동가이기도 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지능지수(IQ)가 높은 데엔 유전적 근거가 있다는 사회생물학적 인식이 급속히 번지자 "계급, 인종, 성에 따른 특권을 유전적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은 나치 독일이 가스실을 만들게 유도한 우생학 정책의 기초를 제공했다"며 이런 담론을 비판하는데 앞장선 일화는 유명하다.

글 곳곳에서 과학적 인종주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 생물학을 꼬집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볼 수 있다. "가난한 자들의 비참이 자연의 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제도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의 죄는 얼마나 큰가."(<여덟 마리 새끼 돼지> 중에서)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며 홍역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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