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후배와 바보 같은 친구가 처음으로 정치에 발을 디뎠다. 4ㆍ11총선을 앞두고 후배는 새누리당에, 친구는 민주통합당에 각각 공천 신청을 했는데 후배나 친구나 정계 입문의 가능성은 사라진 듯하고, 난생 처음 지녔던 정치에 대한 애정이 혐오로 변할 듯하여 괜히 미안하다.
후배 얘기다. 그는 정치의 정(政)자도 몰랐다. 지난달 그가 갑자기 찾아와 15일 공천 신청을 했고 22일 공천 면접을 보게 되었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은 "야, 이 바보야!"하는 힐난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단호했다. "당이 변하고 있다. 애국심이 충만한 정치신인과 지역구에서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한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내가 '정당의 약속을 그대로 믿느냐'고 했으나 그는 의기양양했다.
며칠 뒤 찾아온 그는 풀이 죽어 있었다. 한숨 섞인 말을 간추리면 이렇다. 여당의 쇄신 약속은 애국심과 전문성이 있으면 함께 일하자는 메시지였고, 정치적 신인은 우대한다는 의미로 알았다. 공천 신청을 할 때 공천 심사비용 100만원과 당비 180만원을 내라고 했다.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이리저리 장만하여 흔쾌히 납부했다. 밤새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만들면서 100만원짜리 공천 면접에 큰 기대를 걸었다.
서울 48개 지역구에 대한 공천 면접을 하루에 마쳐야 한다며 해당 지역구에 10분을 할당해 주었다. 4명의 신청자가 면접을 했다. 면접관은 1인 당 1분20초를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6분 정도를 쓰고 나머지 4분 동안 면접관 쪽에서 질문을 할 요량인 듯했다. 간단한 개인소개를 하니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을 끊었다.
나머지 시간에 면접관의 질문을 받은 사람은 사업을 하고 있다는 모씨가 유일했는데, 사업이 잘 되느냐, 업소의 규모가 얼마냐 등을 물어보고는 끝이었다. 이미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잘 읽어주었으면 하고 기대했다. 후배의 한숨이 더 깊어지더니 공천 면접이 끝나고 며칠 뒤 신청했던 지역이 당의 전략공천지구로 확정됐다는 보도를 보았다고 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당으로부터 공천과 관련한 별다른 '애프터 서비스'는 없었던 모양이다. 정말 바보 같은 후배였다.
이번엔 친구의 얘기다. 그 역시 당의 야심적인 약속을 믿고 생업을 제켜두고 난생 처음 공천서류를 만들었다. 예비신청을 위해 선관위에 낸 비용을 제외하고 당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300만원을 납부했다. 심사비용과 당비가 합쳐진 금액이었을 게다. 당이 발표한 2명의 경선후보에서 자신이 탈락한 것은 나중에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선거사무소를 얻어 개소식을 하고 명함을 만들어 돌리고 하면서 사용한 몇 천만 원은 속된 말로 '떡 사먹은 셈' 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300만원은 '떡값'으로 치부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2명의 경선후보가 DJ계와 노사모에서 한 명씩 확정된 것을 지적하며 그에게 "바보 같다"고 했더니, 그는 "이번엔 변화하는 줄 알았는데"하며 한숨을 쉬었다.
주변에 후배와 친구의 사연을 늘어놓았더니 이번엔 나에게 "바보가 아니냐"는 힐난이 돌아왔다. 기자생활도 할 만큼 했고 나이도 충분히 먹었는데 여전히 그런 얘기들을 '기삿거리라고 여기느냐'는 눈치였다. 국회의원 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어떻게 몇 백만 원 날린 것을 아까워하며, 정치신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알고 있었느냐는 말을 하고 싶은데 참는 기색이었다.
바보 같은 고민이 이어진다. 쇄신을 위해 참신한 신인을 영입하겠다는 약속 아래 진행되는 거대 정당의 공천심사제도가 일개 대학의 입학사정관제도 보다 훨씬 모자라는 것은 아닌지. 전략공천을 염두에 두고 신청자를 공모하는 것은 무엇이며, 경선후보자를 내심 정해놓고 정치신인을 유혹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당의 약속을 믿고 청운의 뜻을 품었던 신인들이 초장부터 정치에 환멸을 안고 돌아서고 있다. 어느 쪽이 더 바보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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