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라디오가 전부이던 시절 등장한 흑백TV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컬러TV 방송이 처음 시작될 때의 흥분을 기억한다. TV를 앞세운 멀티미디어는 급속히 영역을 넓혀 고층 건물 옥상의 LED광고판에서부터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에까지 등장한 모니터로 사람들 시선을 한 순간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드디어 스마트폰이 멀티미디어 왕좌에 올랐다. 버스건 지하철이건 실내건 거리에서건 사람들의 눈은 점점 더 스마트폰에 사로잡히고 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도 서로 바라보며 얘기하는 시간보다 각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다.
무얼 보고 무얼 듣고 있을까. 무슨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을까. 대세는 카톡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이다. 쉴 새 없이 사진을 올리고 동영상을 보내고 문자 메시지로 실시간 중계를 한다. 아직도 글 한 줄 쓰기 위해 생각하고 써보고 다듬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놀랍다. 여전히 사생활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해 삶의 자리들을 열어젖히기가 힘든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당황스럽다. 그래서 나는 메시지를 자주 "씹는다." 답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 때로는 몇 번이고 읽어보며 그 마음을 읽어내고 행간을 음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왜 씹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그냥 "곱씹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어디까지 가려나? 어쩌자고 온 종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나? 이렇게 성급하게 메시지들을 날려보내다 무슨 일이 터지려나? 아니나 다를까. 근간에는 '채선당' 사건이 요란하더니 '국물녀' 사건으로 소란스럽다. 엇갈린 주장을 확인하고 판단할 겨를도 없이 일방적인 주장에 흥분해 시시비비를 그르치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선거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뒤바꿔놓았던 악성 루머들도 반복되고 있다. 후유증을 앓고 나면 바뀌겠거니 기대해보지만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아예 악의적인 흑색선전은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선거전략으로 자리잡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SNS가 극도로 기승을 부릴 올해 선거는 대체 어떤 소란을 더 겪어야 할까.
미디어는 정말 대단하다. 미디어의 효용성은 끝이 없다. 미디어의 힘은 전문교육 기회가 없었던 젊은이를 순식간에 한 분야 정상에 오르게 할 만큼 대단하고, 소녀시대의 음악과 춤이 온 세계에 뜨거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만큼 강력하고, 혁명의 불을 붙여 단시간에 난공불락의 한 체제를 무너뜨릴 만큼 위대하다. 그러나 부작용도 갈수록 위력적이다. 메시지의 범람은 때로 홍수 경보를 넘어 침수 지경이다. 더구나 악의적인 메시지의 유통속도는 선의의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부패한 인간의 내면 탓이다. 사람의 타락한 마음은 악의를 여과 없이 전하는 전도체와 같다. 미디어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졌다기 보다 사실은 사람 때문이다. 다만 미디어 확장으로 악의가 놀랄 만큼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증폭되고 있을 따름이다.
미디어의 원형은 사람이다. 메시지의 모태는 사람이다. 오늘날 미디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람이라는 1차 미디어의 앰프일 뿐이다. 2차, 3차 미디어들은 모두 증폭기고 확성기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은 언제나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 모든 미디어는 그래서 사람 마음에 가득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의 통로는 무한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정작 메시지 자체는 갈수록 탁하고 악하다. 어쩌겠는가. 맑은 옹달샘 몇 개가 무슨 소용이랴 싶더라도 진흙탕 미디어 사태 속에 그래도 누군가는 부지런히 맑은 샘물을 흘려 보내야 한다. 누가 알겠는가. 점점 목마른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 샘물을 더 많이 퍼 나를지.
조정민 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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