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핵개발 야심은 국내 선거를 위한 계산된 책략이었나.
이란 당국이 2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총선의 투표율 제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이한 것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던 핵개발 문제가 연일 선거 구호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이란 국영TV는 '미국은 이란 국민의 투표율을 두려워한다'는 배너를 화면에 큼지막하게 걸어 놓았다. 미디어를 동원한 선동뿐이 아니다. 이란 지도부도 전국을 돌며 호전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우리의 응집력을 높여 적들이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음을 깨닫도록 할 때"라고 했고 헤이다르 모슬레히 정보장관은 "높은 투표율로 적들의 입에 한 방 먹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의 강경 외교노선 천명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나 이번 선거에서는 유독 정도가 심하다. 핵개발로 궁지에 몰리자 서방과의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던 때와는 딴판이다.
이란 정부는 왜 투표 독려에 매달릴까. 이번 총선은 2009년 대선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규모의 정치 이벤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란 핵개발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라 서방 국가들이 권력 향배에 촉각을 세울 법도 하다. 하지만 이란 국민이나 국제사회는 도통 관심이 없다.
이유는 총선 결과가 보수파의 잔치로 끝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란의 보수주의 정권은 부정 시비로 얼룩졌던 지난 대선 이후 개혁파의 싹을 잘라버렸다. 당시 야권의 대선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와 메디 카르비 전 의회 의장 등 진보세력의 핵심 인사들은 가택연금 중이고 최대 반정부 단체인 녹색운동은 총선 보이콧을 선언했다. 1월에는 반정부 성향 의원 33명의 출마도 금지시켰다.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의 카림 사자드푸르 연구원은 "새로 구성될 의회의 이념적 색깔은 새까맣거나 옅어도 진회색이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명목상 3,400여명의 후보가 290개 의석을 놓고 겨루는 경쟁 구도지만 개혁파가 일찌감치 배제된 탓에 누가 선출되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보수 정권이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민심의 지지를 얻어야 하고 방법은 투표율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계속된 제재로 민생경제가 파탄 나 중산층마저 등을 돌린 상황. 이란 정부는 답을 외부에서 찾았다. 미국 등과 핵문제로 각을 세우고 있는 현실을 강조함으로써 국민의 결집을 끌어내려 한 것이다.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삼은 투표율은 60%. 2008년 총선의 투표율은 55.4%였다. 정부의 노력이 아니더라도 목표 달성은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투표 기록이 남는 점을 감안해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권력 다툼을 벌여 온 하메네이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체제 수호를 위해 핵문제 등 대외관계에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왔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