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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그래도 정치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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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그래도 정치가 희망이다

입력
2012.03.0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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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한 달 남짓 앞둔 나라 모양새가 어째 2년 반 전 일본 총선을 자꾸 연상시킨다. 2009년 8월 30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반세기만의 정권 교체를 달성한 일본 민주당이 내건 핵심 구호는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였다. 자민당 정권에서는 건설업체와 유착한 의원 주도로 도로며 철도, 댐, 공항 건설 등에 예산을 쏟아 부어 그것으로 경제를 견인했다. 불요불급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곳에 쓸 돈을 돌려 사람을 위해 투자하겠노라고 민주당은 선언했던 것이다.

저출산 대책으로 자녀수당을 주겠다고 했고,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라든지, 농민 보조금 지급 등도 약속했다. 어떤 공약은 선거용일 것이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일본 국민들은 무분별한 개발보다 복지 혜택을 늘리겠다는 민주당의 정치 방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구식 정치 행태에 갇혀 민심을 읽지 못한 자민당은 의석의 3분의 2를 잃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현 정권의 대형 토목공사를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의 전형으로 규정하고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하는 한국 야당들의 모습은 그때의 일본 민주당을 쏙 빼 닮았다. 총선 승리가 유력시되는 제1야당이 이것도 주고 저것도 주겠다고 말할 때 집권 정당이며 정부며 보수 언론들이 그런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비판하고 의심하는 모양새마저도 비슷하다.

그때 자민당과 보수 언론들의 공격이 맞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당 정권이 지금 바로 그 공약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꼴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사업 중단 등 각종 사업 재조정 등을 통해 '사람'에 쓰겠다고 아무리 돈을 짜내도 약속한 만큼 돈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지난해 3ㆍ11 대지진 피해 복구에 뭉텅이로 예산이 나가야 하는 사정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집권 전 민주당이 생각했던 계산법이 별로 현실성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민주당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을 현혹해 집권에 성공한 '사기 정권'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의 보수 정당이나 언론이 실제로 민주당을 그렇게 비난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정치권의 복지 확대 주장에 반대하기 위해 그런 해석이 자주 인용된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일본 국민은 서유럽 복지 선진국처럼 매달 자녀수당 2만6,000엔(36만원)을 주겠다는 민주당의 감언에 현혹됐다는 말이 되고, 불요불급한 공공사업을 중단하고 거기에 쓸 돈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민주당의 공약에서 희망을 엿본 일본 국민의 선택이 틀렸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일본 민주당이 봉착한 문제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책이, 그 정책이 옳다고 믿어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만들어낸 일본 국민의 선택이 잘못이라기보다는 정책 실현을 위해 재원을 조달할 방법을 좀 더 현실적이고 치밀하게 강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증세 없이 재원 확보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부분이다.

지금 한국의 여야가 복지 정책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재원 조달 방법으로 증세를 적극 검토하는 것은 그에 비하면 다행스럽다. 특히 야권이 법인세나 소득세 등 직접세 강화를 통한 부자 증세에 비중을 두는 것은 부의 재분배나 사회 양극화 완화를 위해 환영할만하다. 그 배경에 복지 확대가 절실하다는 국민의 열망이 자리 잡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정치권의 복지 공약 실현에 5년 동안 '340조원 소요' 운운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복지만이라도 하자는 국민의 요구에 찬물 끼얹는 자료를 내놓은 것을 보면서 자꾸 드는 생각이 있다. 한국은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역시 정치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썩긴 했어도 한국 정치에는 그래도 희망이 남아 있고, 거기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범수 문화부 차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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