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정말 1년을 꽉 채우겠다. 총선 공천에 정신 없는 여야가 이번 18대 국회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선출할 리 없을 것이고, 6월에 19대 국회가 개원하더라도 임명동의안 처리에는 몇 주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작년 7월에 퇴임한 재판관의 자리는 잘해야 1년 만에 채워질 전망이다.
이제 헌법재판관 공석사태는 누구에게도 잊혀 가는 해프닝이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 한참 만에 뿔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사퇴할 국회의장에게 면피성 항의서한만 날렸다. 언론도 헌법재판관은 관심 밖이고 온통 총선 얘기뿐이다. 재판관 공백사태를 매듭지어야 할 여야는 자신들이 만든 법이 위헌임을 선언하는 헌법재판소가 미워서 그런지 사태해결에 미온적이다.
국회의 무책임과 집권여당의 횡포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헌법재판소는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다.
재판관 9명 중 한 명의 빈자리가 헌법기관을 반쪽으로 만들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전례 없이 공개적으로 항의표시를 했겠는가.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의 언론인터뷰에 따르면 위헌결정에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공석인 한 표가 위헌여부를 가를 수 있기 때문에 한명의 재판관이 임명되면 그 때 가서 결정하자고 미루는 사건이 많다고 하니 헌법재판소가 온전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인의 재판관으로 파행 운영되면서 위헌결정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의 심리가 지연되어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위헌결정을 받았어야 할 법률 때문에 기본권 침해상태가 해소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위헌적이다.
공석사태의 책임은 무엇보다도 집권 여당에게 있다고 보여진다. 여당은 새 대표 출범 이후 당 쇄신을 논의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며 당명도 바꾸고 라벨을 새로 붙였지만 포장만 새로울 뿐 내용물은 그대로여서 '간판 사기'를 당한 느낌이다. 당 로고마크를 '그릇', '미소', '귀' 모양을 형상화해 국민의 모든 의견을 포용하고 듣겠다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국민 반쪽편의 소리만 듣고 있다. 보수층의 목소리만 귀담아듣고 자기편만 보듬고 있다. 말로는 변화를 외치지만 구태는 여전하다. 생각과 이념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망각한 처사는 변함이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집권 여당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니다. 입법적 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를 침식할 뿐이다. 자기편으로만 구성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이나 결정을 받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 그것이 헌법의 이념이다.
재판관은 대통령, 대법원, 국회에서 3명씩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 추천의 3명 중 1명은 항상 야당 몫이다. 이러한 임명절차는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구성에서 이념의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번 여당은 영원한 여당일 수 없다. 여야의 자리바꿈이 언제라도 가능한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라고 입법이나 국회운영을 수적으로 밀어붙이면 여야가 뒤바뀌는 순간 곧바로 당하게 된다. 이미 몇 차례의 경험으로 입법적 다수가 소수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알게 된 마당에 자기 당의 유불리에 따라 법을 만들면 여야가 뒤바뀌는 순간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여야 모두 당리당략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의정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국민의 대의기관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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