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인들이 수술 많은 진료 분야를 기피하는 경향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 같은 의료계 세태를 꼬집으면서, 항상 긴장하고 선잠 자는 고달픈 일상을 견디며 수술대에 서는 외과의사들을 소개하는 새 기획 기사를 2일부터 매주 연재한다.' 나는 생명을 살리는 써전'이라는 자부심으로 남다른 수술법을 개발하거나 고난도 수술을 발전시켜 온 외과의사들의 분투기이자 그들을 향한 성원(聲援)이다.
30대 미혼에 몸무게는 약 40kg, 키는 160cm가 채 안 된다. 그 작고 가냘픈 여성의 몸 속에 길이 9cm가 넘는 자궁근종 덩어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이 골치 아픈 덩어리는 잘라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수술을 상담하러 찾아온 여성에게 문혜성(49)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조심스럽게 로봇수술을 권했다. 웬만하면 몸에 흉터 남기고 싶지 않을 테고, 앞으로 아기도 낳아야 하는 한창 나이라서다.
상담 후에도 다른 병원을 전전하던 이 여성은 결국 문 교수에게 로봇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 성과는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유럽부인과내시경학회에서 발표돼 국제의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키 작고 마른 동양여성 수술에서는 로봇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여겼던 지금까지의 산부인과학계의 통념을 보란 듯 뒤집었기 때문이다.
동양인에게 너무 큰 로봇
"로봇수술에 쓰는 장비에는 사람으로 치면 팔 역할을 하는 기계가 보통 두세 개 달려 있어요. 수술할 때 이들 로봇팔이 일정한 각도 이상으로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니까 처음부터 어느 정도 이상은 거리를 두도록 제작하지요. 로봇팔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공간이 확보되게끔 설계하는 겁니다. 때문에 수술 받는 사람의 몸집이 너무 작으면 로봇팔이 수술 부위를 벗어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국내에서 쓰는 로봇수술 장비는 대부분 수입품이다. 서양여성 체형에 맞춰 만들어졌을 거란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양여성에 비해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인 동양여성에게는 로봇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 문 교수를 찾아온 여성이 그런 사례였다.
로봇을 못 쓰면 배를 열거나 일반적인 내시경수술로 근종을 떼내야 한다. 개복술은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크거나 흉터가 남을까 신경 쓰는 여성 환자들은 특히 기피한다. 또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개복술이나 일반적인 내시경수술은 큰 단점이 있다. 근종은 여러 층의 자궁 내부 근육에 생긴다. 수술로 근종을 떼어내고 나면 너덜너덜해진 근육층을 다시 봉합해줘야 한다.
"한두 층만 봉합해 놓으면 아기를 낳을 때 자칫 다시 터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출산 계획이 있는 여성은 적어도 서너 층을 아주 정교하게 봉합해야 안전합니다. 개복술이나 기존 내시경수술만으로는 여러 층을 정교하게 봉합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의사로서는 어느 환자에게나 로봇수술을 하라고 권하기 어렵다. 보통 내시경수술보다 최소 서너 배는 비싸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미혼 여성 중 경제사정이 허락하는 환자들에게 주로 로봇수술 이야기를 꺼내본다"고 말했다.
로봇 회사도 놀란 아이디어
문 교수를 찾아왔던 자궁근종 환자는 로봇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간 뒤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상담은 우리 병원에서 했지만 실제 수술은 다른 더 큰 병원에서 받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봤나 봐요. 그런데 가는 데마다 로봇수술은 어렵다고 했대요. 결국은 절 다시 찾아왔죠."
이 여성을 로봇으로 수술하기 위해 문 교수가 낸 아이디어는 이렇다. 로봇팔이 설치돼 있는 위치 자체를 아예 바꿔버린 것이다. 로봇팔을 원래 위치보다 서로 가까이 두고 봉합하는 방향을 살짝 트는 등 로봇팔이 움직이는 각도가 작아지도록 수술기법을 독창적으로 변경했다.
"로봇 제작회사에서 자기들도 몰랐던 기술을 시도했다고 깜짝 놀라더군요. 사실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도 자신 있게 나서서 알리지 못하는 의사가 많아요. 그만큼 의료계가 보수적입니다. 원칙대로 해야 인정받는 사회죠.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이라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 의학도 더 빨리 발전하겠지요."
실제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암 수술은 내시경으로 하지 말라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젠 자궁내막암이나 자궁경부암 초기는 대부분 내시경수술이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도들이 인정 받은 결과다. 요즘엔 난소암 초기까지 내시경으로 수술하는 의사도 있다. 문 교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결혼도 안 한 딸 같은 난소암 초기 환자를 배 쭉 째고 수술하려니 도저히 마음이 편치가 않았어요. 찐득찐득한 점액 형태로 고여 있는 암이라 쫙 빨아들여야 했죠. 그런데 보통 내시경수술용 흡입기를 쓰면 암이 자칫 도로 빠져나가 다른 데로 번질 우려가 있었어요. 몇 시간 내내 아이디어를 짜낸 끝에 결국 다른 도구를 응용하기로 했지요. 좀더 강력한 개복술용 흡입기를 가져다 웬만큼 암을 제거한 다음 내시경수술용 흡입기로 나머지를 빼냈습니다." 별 것 아닌 듯 보일지 모르지만 환자 한 명을 위해 다른 의사가 하지 않는 방법을 시도한다는 건 웬만한 결단력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외과의사에게 중요한 건 '결단력'
매일 같이 메스를 잡는 외과의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기질로 문 교수는 결단력을 꼽는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뿐 아니라 환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생명을 좌우하는 암 보는 의사가 모호한 태도라면 환자는 불안해지죠.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써전의 기본이에요."
함께 일하는 의료진뿐 아니라 병동 환자들 사이에서 문 교수는 '칼 같은 선생님'으로도 통한다. 병원에 좀 더 있고 싶다고 환자가 요청하면 대부분의 의사는 들어주게 마련이지만 문 교수는 통원해도 되는 환자가 왜 입원하냐며 내보내는 식이기 때문이다. 통원치료는 병이 중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환자에게 인지시킨다는 의미도 된다. 또 의료진이 수술실에서 환자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 하는 걸 질색한다. 그랬다가 문 교수에게 혼이 난 전공의가 한둘이 아니다.
"환자를 병원에 오래 있게 하지 않고, 기다리게 하지 않고, 치료는 신속 정확하게. 이게 저에게 생명을 맡기는 환자를 대하는 기본입니다."
■ 문 교수 자궁암 일문일답
"자궁암 수술후 항암치료때 무리한 운동 삼가세요"
Q. 자궁에 종양 생기면 어떤 증상이.
A. 가임 여성 10명 중 2, 3명이 겪을 만큼 흔한 근종(양성종양)은 별다른 증상이 없을 수 있다. 다만 근종이 자라면서 질 출혈이나 골반통, 불임, 조산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치료가 필요한지 확인해야 한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자라 생긴 근종과 달리 폴립(양성종양)은 혈관이 뭉친 덩어리다. 성관계 후나 불규칙적으로 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기는 자궁경부암(악성종양)은 처음엔 별 변화를 못 느끼다 암이 커질수록 출혈과 냉이 심해진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가 쉽지 않을 만큼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Q. 자궁암 수술 받으면 부부관계 못 하나.
A. 자궁이 없다고 성생활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보통은 수술 후 6주부터 성관계가 가능하다.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라면 치료가 끝난 뒤 2주~1개월 이후 성관계를 시작하는 게 좋다. 처음엔 약간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암 수술이나 치료 후 부부관계를 피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성생활 때문에 병이 재발하진 않는다.
Q. 항암치료 받으면 대머리 되나.
A. 대개 항암치료 후 1, 2주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 2개월에 가장 심해지지만, 영구적이지는 않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회복된다. 탈모가 심한 시기엔 가발이나 모자, 스카프를 이용하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
Q. 항암치료는 꼭 입원해 받아야 하나.
A. 병원에서 항암제를 투여 받고 당일 집으로 돌아가는 통원치료도 가능하다. 주사 말고 먹는 항암제도 나와 있다. 우리 병원에서는 암 환자를 위한 쾌적하고 편안한 전문주사실도 운영하고 있다.
Q. 자궁암 수술 받고 운동해도 되나.
A. 처음 한 달 정도는 아침저녁 30분~1시간씩 가볍게 걷는 게 좋다. 다음 단계는 수영이나 자전거, 등산, 골프를 가볍게 하고, 3개월 이후부터는 본인이 즐기던 대부분의 운동을 다시 할 수 있다. 단 수술 후 항암제나 방사선치료 중이라면 가벼운 산책 외에 심한 운동은 삼가길 권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