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지난 23, 24일 열린 3차 고위급 회담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유예하고 영변에 가동 중인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중단하는 대신 식량 지원을 상호 이행하기로 합의한 것은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양국이 처음으로 맺은 외교적 결실이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관리해 나갈 지렛대를 확보했고 북한은 경제 원조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보완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번 합의는 4개월 전에 열린 2차 회담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UEP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수용을 촉구했고, 북한은 영양지원 규모를 24톤에서 30톤으로 늘리면서 쌀과 옥수수도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일단 각자의 조건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반면 이번에는 북한이 2006년과 2009년에 실시했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유예까지 합의에 포함됐다. UEP 중단과 더불어 미국이 6자회담의 전제로 내세운 조건들을 북한이 모두 수용한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로 인해 올해 상반기에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다.
다만 북한은 UEP중단과 IAEA 사찰 허용, 핵 미사일 실험 유예 등 미국과 약속한 비핵화 사전 조치에 대해 '조미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이란 단서를 붙였다. 한번에 모든 약속을 이행하기보다 미국 측의 식량지원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단계적으로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란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 같은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양측의 정치적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이란 핵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북핵 문제가 악화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미국의 목표인 핵 불능화에 비하면 UEP 중단은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지만 연말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외교적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입장에서는 4월15일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인 태양절을 앞두고 잔칫상을 차릴 여력이 생겼다.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40만톤으로 추정되는 것에 비춰볼 때 미국의 지원은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다만 식량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후속회담에서 북한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미국이 강조하는 식량 배분 모니터링을 거부할 경우 합의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IAEA 사찰단을 받아들이더라도 큰 틀의 협조를 거부해 사찰단 활동을 무력화 시킬 경우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처럼 북미간 대화가 진전을 보이는 것과 달리 남북관계는 좀체 경색 국면에서 벗어날 계기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이 여전히 남측을 외면한 채 미국과의 양자대화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비록 북미 양국의 공동 발표 후 "합의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지만, 속내가 마냥 편하지 만은 않을 것이란 말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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