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포 일삼는 슈퍼갑" "문화역량 이끄는 거인" 이중적 시선
"영화인들끼리 만나면 CJ엔터테인먼트가 너무 한다고 서로 성토하기 바쁘다. 영화 개발비를 적게 준다느니, 이익을 너무 많이 챙겨간다느니 말들이 많지만 결론은 언제나 비슷하다. 그래도 CJ엔터테인먼트가 망하지 않아야 한국영화계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영화사 대표의 말은 문화제국 CJ E&M을 향한 대중문화계의 이중적인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중문화 관계자들은 CJ E&M를 마냥 좋아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미워할 수도 없는 업계의 공룡, 나아가 문화 생태계에 악영향도 끼치지만 결국 국내 대중문화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율배반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시너지 효과? 독과점의 병폐?
1일로 합병 출범 1년을 맞은 CJ E&M은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실력자의 위치에 있다. 영화사업부문인 CJ엔터테인먼트의 시장 지배력은 특히 눈에 띈다. '트랜스포머3'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써니' '완득이' 등 지난해 흥행 상위 10편의 영화 중 6편이 CJ엔터테인먼트 배급작이다.
케이블 업계에선 2010년 라이벌 온미디어를 인수하면서 최강자가 됐다. 뮤지컬도 오디뮤지컬컴퍼니와 뮤지컬 해븐, 설앤컴퍼니 등 주요 제작사들이 CJ E&M과 손잡고 있어 "CJ E&M이 없으면 대형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없다"는 말이 심상찮게 떠돈다.
각 분야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마찰음이 많이 흘러나온다. CJ그룹이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 당시 선봉으로 내세웠던 영화사업에서 특히 불만들이 쏟아져 나온다. 배급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오랜 비판과 함께 대형 투자배급사가 제작까지 하면 어떻게 하냐는 군소 영화제작사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기업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에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서 창의적인 영화 제작을 막는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CJ엔터테인먼트가 CJ그룹 계열사 CJ CGV의 측면 지원에 힘입어 영화계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영화와 방송, 뮤지컬 등이 CJ E&M 깃발 아래 모이면서 발휘되고 있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해석도 엇갈린다.
지난해 10월 CJ E&M이 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3'의 주요 경쟁자들을 CJ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 영화 '완득이' 특별 시사회에 초대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해석이 둘로 나뉘었다. 영화와 방송 등 대중문화 각 분야를 장악한 공룡기업이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눈앞의 수익을 위한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이 있었고, 해외에선 보편화된 형식의 마케팅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미국의 경우 20세기폭스가 자신들이 투자ㆍ배급한 영화에 관계사 폭스방송을 노출시키는 식의 제휴 마케팅이 종종 시도된다. 한 영화 관계자는 "CJ E&M이 시너지 효과와 독과점의 병폐 사이에서 한국적 상황에 맞게 어떤 식으로든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모의 경제ㆍ해외 시장 개척 기대 여전
CJ E&M 출범으로 내부 칸막이는 사라지고 있으나 문턱은 더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대중문화계 한 관계자는 "모든 것을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만 있고 외부로부터의 판권구매 활동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순기능은 합병 이전보다 오히려 줄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자신들이 보유한 여러 케이블 채널에 동시 방송하는 걸 보면 문화 다양성도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CJ E&M은 자체 제작한 코미디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를 매주 토요일 밤 6개 채널(tvN, 온게임넷, XTM, 수퍼액션, 스토리온, 중화TV)을 통해 동시 방송하고 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코리아'는 4개 채널(Mnet, KM, XTM, 스토리온)에서 방송한다.
획일화에 대한 우려는 뮤지컬계에서도 나온다. 공연 관계자들은 "특정 대자본의 시장 독점으로 다양성이 파괴되지 않도록 시장의 큰손인 CJ E&M이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규모의 경제 실현과 이를 발판으로 한 해외 시장 개척이라는 순기능에 대해선 CJ E&M에 거는 기대가 통합 이전보다 더 크다. 탄탄한 자본력과 해외까지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는 것이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국내 중소규모 기획사들은 해외 공연 노하우가 없는데 CJ E&M 같은 기업이 큰 도움이 된다. 함께 손을 잡으면 공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적인 대중음악 행사인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매년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뮤즈나 라디오헤드 등 해외 대형 뮤지션들을 초대할 수 있는 것도 CJ E&M의 지속적인 투자 덕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K팝 열풍으로 한껏 들뜬 가요계에선 CJ E&M의 역할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발견한다. 강태규 뮤직팜 이사는 "CJ E&M은 전문인력도 잘 구축돼 있다. K팝의 해외 진출에 있어 전진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CJ E&M 관계자는 "아직은 과도기라 여러 말들이 나올 수 있지만 방송과 영화, 대중음악을 묶어 해외 시장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우리 목표"라며 "이런 저런 시도조차 안 하면 시장 일등 기업의 책임을 오히려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SM·롯데 엔터테인먼트 독주 막을 대항마로 뜰까
최근 증권가에서는 잇따라 연예 매니지먼트 업종의 대장주인 SM엔터테인먼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난 1월 SM엔터테인먼트의 초록뱀미디어, 삼화네트웍스, 팬엔터테인먼트 등 드라마 제작사 인수설이 흘러나온 데 이어 2월에는 오리온그룹 계열사로 쇼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영화 투자 및 배급 업체 미디어플렉스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결국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K팝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상 콘텐츠 제작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SM엔터테인먼트의 행보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SM엔터테인먼트도 이들 인수설은 부인하면서도 "본격적인 영상 콘텐츠 사업의 추진을 위해 타 법인에 대한 인수를 포함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현재 대기업의 콘텐츠 시장 경쟁은 그야말로 CJ E&M이 독주하는 형국이다. IPTV 출범 등 미디어 융합을 위한 정책 방향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SK텔레콤, KT, 오리온과 CJ가 4강 구도로 경쟁하던 2006년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양상이다.
케이블 채널과 외주 제작사 등을 거느린 IHQ에 지분을 투자해 콘텐츠 사업을 벌였던 SK텔레콤이나 영화, 드라마 사업에 뛰어들었던 KT의 콘텐츠 사업은 흐지부지된 상태고 공연(제미로)과 영화(메가박스ㆍ쇼박스), 방송(온미디어) 부문에서 산업화를 선도하던 기업 오리온은 영화 투자ㆍ배급 사업(쇼박스)을 뺀 나머지 계열사를 모두 매각했다.
이에 따라 과연 어느 곳이 CJ의 독주를 막을 대항마가 될 수 있을지에 콘텐츠 업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업계에서는 체급의 차이는 있지만 방송, 영화 사업 진출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가 우선 순위로 꼽히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무엇보다 자금 동원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3월 유상증자로 들어올 자금을 더하면 1,000억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보유하게 된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의 제작에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것은 물론 타 기업 인수ㆍ합병에 쓸 '총알'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영화에 이어 공연사업 부문에서도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롯데엔테테인먼트를 주시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공연계에서는 CJ의 독보적인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롯데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샤롯데씨어터가 올 1월부터 공연 중인 뮤지컬 '닥터 지바고' 등 콘텐츠에 공동 제작자로 나선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2006년 개관한 뮤지컬 전용극장 샤롯데씨어터는 지난해 4월 롯데월드 소속에서 롯데엔터테인먼트로 이관되면서 단순 대관뿐 아니라 공동 제작ㆍ투자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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