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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한국영화 간판으로 우뚝 선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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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한국영화 간판으로 우뚝 선 하정우

입력
2012.02.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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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장난기가 내 연기의 원천…역할 바꿔가며 관객 놀라게 하는 게 즐거워요"

"이젠 물이 올랐다"는 말이 잇따르고, "마침내 전성기를 열었다"는 상찬까지 들린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일 개봉)로 암흑가 젊은 두목의 냉기를 전하더니 한 달이 채 안돼 로맨틱코미디 '러브 픽션'(29일 개봉)에서 자의식 강한 무명 소설가로 웃음 바이러스를 옮기려 한다. 남들 같으면 1년 이상 시차를 두고 출연해도 연기 변신이라는 호들갑스런 평가를 받을 만한데 그는 뭐 별거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두 배역을 '뚝딱' 소화해 냈다. 별다른 기합도 넣지 않고, 칼을 휘둘렀는지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간결한 동작으로 볏단을 깔끔하게 베어내는 검술의 고수처럼 그는 충무로의 연기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하정우(34). 숱한 꽃미남들이 별자리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충무로에서 살아남은 젊은 연기파 주연배우다. 독립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로 충무로 관계자를 놀라게 하고, '추격자'로 대중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던 그는 유망주에서 이제 한국영화의 간판이 됐다.

원하는 걸 손에 쥔 자의 여유가 얼굴에 가득한 하정우를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질문마다 막힘 없이 달변으로 응했다.

-연기가 더욱 간결해진 느낌입니다.

"촬영을 할 때 캐릭터가 영화 안에서 주어진 지점 이상을 넘어가면 늘 쑥스러워요. 캐릭터는 영화의 범위 안에서 소화하는 거예요. 뭔가 연기를 뽐내려는 순간 배우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 같아서. 딱 거기까지만 연기해요."

-신작 '러브 픽션'은 여주인공의 겨드랑이 털에 화제가 집중돼 배우로서 불만도 있을 법한데.

"아뇨. 내세우는 게 털인 걸요. 우리 두 시간 동안 겨털(겨드랑이 털) 얘기만 해도 돼요. 좀 전에 (공)효진이랑도 통화했어요. '그래 우리 얘기는 겨털이야. 모든 사람들이 지금 겨털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관객들에게 잘 전해주면 된다'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겨털의 이야기는 참 흥미로워~요. 여자들을 해방시키는 역할도 하고요. 하계 기간에는 깎더라도 동계 기간에는 기르는 그런 걸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된다면 좋겠어요. 신이 만들어준 선물이잖아요.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남자들도 다 깎든지…(웃음)"

-스크린 밖에선 넉살도 좋고 사회 생활도 잘하는 듯해요.

"배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나니 그렇게 된 거죠. 먼저 악수하고 인사를 하면 즐겁게 일할 수 있더라고요. 의식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노력한 부분도 있어요."

-'러브 픽션' 주인공처럼 무명시절을 좀 겪었는데.

"스무 살에 처음 연극 무대에 섰어요. 스물 한 살 때 CF오디션과 방송사 공채시험을 봤는데 싹 다 떨어졌어요. 내 갈 길이 아니구나 싶어 군대 갔다 온 뒤 3년간 빡세게 연극만 했어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사람들이 '쟤가 쟤구나' 하게 된 게 2005년입니다. 무명시절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998년 한 아이스크림 광고에 주변 손님으로 나온 적도 있어요. 제 얼굴이 딱 반절 나왔죠. 군복무 중엔 연예 사병으로 일하며 국방부 영화 10편에 출연했어요."

잘 알려진 대로 하정우는 중견 탤런트 김용건의 첫째 아들이다. 그가 막 연예계에 얼굴을 알릴 때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젠 김용건의 이름 앞에 하정우의 아버지라는 형용이 앞선다. 큰 부족함 없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스무 살 청춘 하정우의 삶에도 먹구름이 꼈다. "빚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대학 시절 낭만을 즐기진 못했을 것 같네요.

"저의 탈출구는 그냥 연기하는 거밖에 없었어요. 여름방학 때는 공연하고, 겨울에는 학생들 과외하며 보냈어요. 일년 내내 쉼 없이 그렇게 살았어요. 스무 살 때부터 현실이라는 바람이 훅 불어온 거죠. 아버지가 집안 경제기반 복구하는데 7년이 걸렸어요. 어떤 것도 아버지한테 손 벌릴 수 없었고 저 혼자 다 해결해야 했어요. 배우 김용건이다 하면 뭔가 많이 벌爭昰?거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연기를 잘하는 거밖에 없었던 거죠. 전투하듯이 하루하루를 보냈던 거 같아요.

-철이 일찍 들었겠어요.

"아버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 방송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4, 5개를 하셨어요. 우리 형제(그의 동생은 배우 차현우다)가 바짝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동생과 저는 군대도 일찍 다녀왔어요. 일찌감치 시련을 겪어서 제가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배우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제가 배우가 안 됐을 수도 있죠. 어렸을 땐 그냥 아버지가 멋져 보였어요. 모든 게 다요. 어딜 가든 모르는 사람들도 아버지를 다 알아보고 인사하고 그랬으니까요."

-아버지가 멋있는 역할만 하다 드라마 '서울의 달'부터 좀 망가지셨는데.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평소 장난기 많은 아버지의 모습대로 나오시더라고요. 최근 '서울의 달'의 일부 영상을 봤는데 제 연기 스타일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무의식 중에 아버지 스타일을 많이 받아들였나 봐요."

-아버지랑은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영화 제작자 같아요. '이 영화 잘 될까?' '첫 주 관객은 얼마래?' 이런 질문 많이 하세요. 스마트폰으로 영화진흥위원회 관객 집계를 매일 확인하시고 아침에 전화하세요. 제가 한때 선글라스 쓰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요새는 그러지 않아요. '선글라스 쓰지 말라고 이순재 선배님이 꼭 전해달라 했다'는 아버지 말씀을 들은 뒤부터죠. 그런 지적 받으면 뜨끔뜨끔하죠. 아버지 아는 분들이 곳곳에 있으니까요."

-어릴 때 방송 촬영장에서 탤런트들 많이 만났겠네요.

"촬영장엔 많이 안 갔고, 고두심 아줌마, 유인촌 아저씨 등이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오셨어요. 최불암 아저씨, 현석 아저씨도요. 지금은 밖에서 뵈면 다 선생님이라고 하죠. 김혜자 선생님과는 함께 영화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우리 용건씨 아들이 마냥 애기인줄 알았는데 나랑 상 받았네' 하시더군요. 김자옥, 박정수 아줌마도 어려서부터 알죠. 박정수 아줌마랑은 '국가대표' 같이 출연했고, 주현 아저씨는 '구미호 가족'에서 제 아버지로 나왔어요. 백일섭 아저씨랑도 친하죠. 주현 아저씨는 아버지 선배이고 백일섭 아저씨는 아버지랑 자취를 같이 했어요. 남능미 아줌마랑도 같이 몰려 다니셨다고 해요. '구미호 가족' 찍을 때 주현 아저씨를 큰 아버지 모시듯 대했어요. 현장에서 담배도 못 피고…."

하정우는 대학 시절 연극에 빠져 살았다. "오델로 연기를 할 때는 삭발한 채 긴 칼을 옆에 차고 강의에 들어갔고, 연극 말투로 사람들과 대화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여자친구가 토라질 때마다 던진 냉소적인 한마디. "넌 극본이나 읽어." 하정우는 "대학시절 '나는 프로다'는 생각에 연극에 매달려 살았던 게 지금 내 연기의 힘"이라고 자평했다. 아버지의 후광이 있었고 열정이 뒤따랐지만 하정우의 연기 생활은 출발부터 탄탄대로를 달리진 못했다. 초년병 때는 "까이기도 많이 까였다"고. 오디션을 통과했으나 아무런 이유 없이 출연에서 배제된 적도 있고, 출연료 전액(200만원)을 떼이기도 했다. "현실의 벽을 알게 됐고, 인간적인 배신감보다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지는 시기"였다. "소주 마실 기운까지 없을 정도"로 현실에 실망하면 그는 "달리기로 상실감을 극복하려 했다"고 말했다.

-연기 시작할 때 예상했던 속도로 지금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교만이 될 수가 있는데… 저는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감사하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산을 타겠구나, 등산을 시작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정우의 시대란 말을 들으면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요. 내 미모를 뽐내는 역할을 좀 해봐? '범죄와의 전쟁'의 최영배처럼 간지나는 역할 좀 골라봐?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어려서부터 했는지.

"글쎄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배우가 된다는 것에 대해 좀 민망하기도 했어요. 배우가 되는 사람들은 끼가 많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 같았으니까요. '내가 어떻게 연극학과 들어가지? 날라리만 들어가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 때문에 좀 거리감이 있었어요."

-그럼 연기를 하게 했고, 배우로 계속 살도록 하는 에너지는 무엇인가요.

"호기심과 장난기? 저는 만우절을 크리스마스만큼 좋아해요. 누굴 속이고 장난치면서 희열을 느껴요. 연기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역할을 바꿔가며 관객을 놀라게 하면서 나오는 희열이요. '조폭 두목을 보여주고 찌질한 작가를 보여주면 관객은 기겁을 할거야' 하며 혼자 히죽거리게 돼요. 장난도 잘 치려면 갈수록 준비도 잘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것에서 재미를 느껴요."

-일상에서 히트시킨 장난이 있나요.

"굉장히 많아요. 가장 최근엔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국토대장정을 다녀왔는데 같이 간 동료에게 장난을 좀 쳤죠. 이 친구가 발에 물집이 잡히고 고름이 생겼길래 의사랑 짜고 발가락 절단해야 한다고 겁을 줬어요. 낙오했다는 생각만으로도 이 친구는 눈물 뚝뚝 흘리고 주변에선 안아주며 위로하고 그랬죠. 그렇게 바람을 잡고 장난 치는 걸 좋아해요. 친구 중에 철인3종 경기 선수가 있는데 사람을 시켜 전화해 광고 모델 섭외 장난을 친 적도 있어요. 처음 전화해선 1년에 2,000만원이라고 하고선 사흘 있다 1,000만원도 어렵겠는데요, 이런 식으로 말하고 반응을 보기도 했어요."

-그런 장난이 영화 연출과 비슷해 보이는데.

"고등학교 때 집에 있는 비디오카메라로 동네 애들 불러다가 토크쇼 같은 것을 만들었어요. 제가 가면 쓰고 초대 손님으로 등장하는 내용이었어요. 지금도 그 테이프는 집에 있어요."

-앙드레 김 역할도 계획 중이라는데 과연 어울릴까요.

"아직은 시나리오가 안 나와 언제 하게 될지 몰라요. 전 그분이 언제부터 이마를 마스카라로 칠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하고 왜 하얀 옷을 입기 시작했는지도 알고 싶어요. 앙드레 김 선생님의 젊은 시절부터 마지막 모습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이면을 보여주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 활동을 감안해 대학시절 어학연수도 다녀왔다는데.

"지금도 해외 활동을 꿈꾸고 있어요. 차기작인 '베를린' 촬영이 끝나면 영어 공부를 위해 한 6개월 정도 해외 나가 있을까 생각 중이에요. 아마 장소는 하와이?"

-여자친구는 어쩌고요.

"각자 열심히 살아야죠. 해외에 공부 하러 나가지 않으면 국내에서 대학원 진학할까 해요."

-예명은 어떻게 짓게 됐는지.

"같은 소속사 배우 김성수씨가 그룹 쿨의 멤버랑 이름이 같아 하정우로 바꾸려다 그만뒀어요. 제 본명이 김성훈이라 심심하고 임팩트가 없어 바꾸려던 차에 떠돌던 하정우라는 이름이 제게 온 거죠. 저는 아니다 싶어서 더 남자다운 금성훈 정태성으로 바꿀까 고민을 했죠. 아버지께 의견을 여쭈었더니 하정우로 하라 하시더군요. 이름 바꾸고선 성격이 밝아졌고, 좀 많이 웃는 얼굴이 됐어요. 예전엔 '화난 사람 같다, 고독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아버지 말씀도 잘 따르는 듯해 좀 건전해 보이는데, 주량은?

"소주 2~4병 정도? 제가 하는 일은 너무 자유롭고 어디로 튈지 몰라요. 일상에서라도 바로 잡아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니 어른들 말씀이 딱 맞아떨어져요. 그러니 그분들 말씀 잘 들어야겠다 생각도 하게 돼요. 술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배우로서 자기관리를 하는 건 운동밖에 없으니 그걸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해요."

인터뷰 동영상 주소 http://youtu.be/tZRnNOtBiZE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 벌써 24편 출연한 다작배우

하정우는 충무로에서 다작 배우로 유명하다. 800만 관객이 본 '국가대표'에서 중심 역할을 했고, 3만명 가량이 찾은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대중이 외면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두 편('시간'과 '숨')에선 주인공을 맡았다. 주류 상업영화와 저예산영화를 오가는 그의 행보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 쫓아다니는 일부 스타 배우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정우는 "20대 때 (연기 공부 등을 통해) 다져놓은 생각과 모든 것을 지금 쓰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리 다작을 하냐 하시는데 그때 저장해놨던 것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영화 100편 출연. 하정우의 배우 인생 목표다. 한번에 4, 5편을 겹치기로 촬영하던 1960년대도 아닌 21세기엔 너무나도 원대한 포부다. 쉽지 않은 목표를 세운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축구선수도 국가대항전 100경기를 뛰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는데 자연인 김성훈(그의 본명)이 배우 하정우에게 그런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반영된 목표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는 총 24편. 하정우는 "출연작 DVD를 모두 시기 순으로 정리해 집안 장식장에 꽂아 놓았다. 100편을 그렇게 꽂아놓으면 마음이 참 뿌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주연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앞으로 작품을 많이 해야 하는 내가 주연 조연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괜히 불편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할의 비중으로부터 의식적으로 자유로워지자고 다짐을 해요. 영화를 제가 너무 좋아해서 100편 출연 목표를 세운 듯해요. 배우 꿈을 꾸던 대학 시절 영화 한 편 보고 자는 게 제 생활에 위로와 힘이 되었어요. 그때 용산 가서 샀던 DVD 하나하나에 따스함이 있는 것 같거든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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