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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재래시장이 되살아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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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재래시장이 되살아나려면

입력
2012.02.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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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대학의 기업윤리 토론 과제로 자주 등장한다. 다양한 '월마트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은 월마트가 미국의 지역사회를 어떻게 망치는지를 주로 다룬다. 대대로 철물점이나 빵집, 양복점, 청과물상 등을 해온 자영업자들의 도산이 잇따라 지역상권이 붕괴하고, 전통적 장보기 방식이 사라지면서 주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로막혀 공동체 의식이 묽어졌다. 기대를 모았던 지역의 고용ㆍ세수 증대 효과는 미미하다. 게다가 월마트 안의 노동문제가 꼬리를 물고, 아동노동 등 개도국의 노동착취 문제가 세계적 논란을 부른다. 부정적 의미의 '월마트 효과'다.

이와 달리 '날마다 저가(Everyday Low Price)'를 실현하기 위한 월마트의 경영혁신 기법이 경쟁업체와 다른 업계로까지 번진 생산성 향상도 '월마트 효과'로 불린다.

천양지차인 두 효과는 세상일이 그렇듯, 따로 나눌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구매와 물류 양면에서 비용을 낮추고,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으로 노동비용을 줄여야만 소비자에게 저가격이란 선물을 안길 수 있고, 부정적 효과 또한 그 필연적 귀결이다. 이리 보면 시장경제의 장점을 멋지게 살린 모범 기업이지만, 달리 보면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의 파괴자다.

기업윤리 논쟁도 팽팽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으뜸은 법의 한계 안에서 기업의 주인인 주주에게 최대의 이익을 안기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서 월마트처럼 윤리적 기업이 드물다. 반면 CSR이 주주뿐만 아니라 종업원과 납품업자, 지역사회 등 이해 관계자 전체에 미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에게 월마트는 비윤리적 기업의 전형이다.

해묵은 월마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국내의 대표적 대형마트ㆍ기업형 슈퍼마켓(SSM) 업체인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의 '수박경제론' 때문이다. 겉은 퍼렇지만 속은 뻘건 수박처럼 한국이 시장경제는 말뿐이고, 실제로는 공산주의 못지않다는 그의 주장은 전북 전주시에서 시작된 대형마트ㆍSSM 영업규제가 직접적 계기다.

그의 주장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의도된 무지'가 깔려 있다. 휴일과 심야영업 제한이 시장경제의 축인 기업의 영업활동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완전한 자유시장이 전제될 때만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자본주의 초기에 잠시 떠돌았을 뿐, 대공황 이후 그런 전제는 허물어졌다. 심지어 2008년 '리먼 쇼크' 때까지의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자유시장은 상대적 의미에 국한됐다.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범위와 강도를 다투는 규제 완화는 활발히 주장됐지만, 전면적 규제 철폐 주장은 설 자리가 없었다. 현행 헌법에 비추더라도 시장에 대한 개입ㆍ규제의 전면적 철폐는 전면적 개입과 마찬가지로 위헌적이다. 처음부터 한국, 아니 다른 선진국 시장경제가 수박처럼 퍼런 게 아니라 레몬이나 바나나처럼 노르스름했던 셈이다.

다만 대형마트ㆍSSM 영업규제에 따른 반사이익이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의 영세업자보다는 개점에 10억~30억원이 든다는 중소형 마트에 주로 돌아갈 것이란 그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의 속마음이야 모르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대형마트 영업규제 움직임을 보면서 정책수단과 목표가 어긋날지 모른다는 개인적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얼마 전 FM 음악방송에서 소개된 청취자 편지는 무심히 지나쳤던 생활양식의 변화를 일깨웠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200ℓ 냉장고로 충분했는데 지금은 부부 살림에 600ℓ 냉장고가 모자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소비자가 변했다. 장바구니를 들고 날마다 재래시장을 찾는 주부들이 드물어졌다. 대신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대형마트 계산대에 산더미처럼 물건을 쌓는 부부의 모습이 흔하다. 이런 상태라면 재래시장은 당장 주차장 문제만으로도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어렵다. 상인들의 적극적 자구 노력과 소비행태 변화 없이는 정책목표의 달성은 멀어 보인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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