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사회에서 '윤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현재 윤리적인 것은 기득권층인 기성세대가 맹신하고 있는 바와 관련된 문제다. 그래서 지금 공론화되는 반윤리적인 것의 대부분은 기성세대가 눈살을 찌푸리는 장면들, 더 정확하게 말해서 기성세대의 취향에서 아이들이 보면 안 된다는 사고에서 잣대가 마련됐다. 그러므로 현재의 윤리는 이른바 그들만의 '윤리'다. 지금 창작자의 창의성과 창작의 자유가 많이 보장됐다고 해도 사실 사회 전반에 뿌리박고 있는 그들의 윤리의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창작자는 창작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식의 윤리관에 갇혀 있어야 한다. 이런 딱딱한 윤리의 관점이 정책적으로 악용되는 사례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런 면에서 보면 그들의 윤리는 쉽게 다루기 곤란한 문제들을 사회의 문제로 둔갑시켜 회피하는 수단일 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5개 웹툰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기 위해 검토 중이다. 청소년 문제 중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학교폭력의 '주적'을 만화와 게임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유는 웹툰의 폭력적인 장면이 청소년들에게 학교폭력을 조장할 수도 있어서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속이 터진다. 우스운 것은 선정에 아무런 근거가 없고, 심지어 유해매체 선정 사유가 모두 똑같다. 어느 부분이 문제도 아닌, 그냥 전체적으로 폭력적이니까 문제다, 라는 논리다. 안 좋아. 못하게 해. 하면 그만이다. 그 간단함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휩쓸려가는 지 정말 그들은 모를까?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탄생하면서 만화들이 유해물로 지정된 적이 있었다. 이로써 거의 모든 만화 관련 잡지들이 폐간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그 작업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의 삶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어차피 만화야 시간이 남아돌아서 보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거니까 하는 사고였다.
지금 청소년 문제가 그야말로 주 관심사다. 청소년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밥그릇을 빼앗길까 좌불안석이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지경이다. 눈에 보이는 뭔가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잘 드는 칼을 또 한 자루 만들어 심의위원들에게 쥐여줬다. 복잡한 문제들? 그럼 그 칼로 심의해. 예컨대 심의의 잣대 안에서 '청소년의 폭력 문제'를 보면 '문제'의 실체는 이렇다. 게임과 만화는 공부를 방해하는 금기 사항들이다. 그러므로 금기시하는 것들을 논하지 마라. 심의가 쳐놓은 성역 밖에 있는 것은 무조건 해로운 것들이다. 그렇지만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선정성과 창의성의 차이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아니, 그들, 심의하고 있는 자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심의'들이 문제가 되는 현안들을 이 땅에서 어두운 세계로 마구 던져버리고 있다. 가만히 보면 이렇게 쉬운 문제 해결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청소년을 위한 콘텐츠가 필요하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색만 맞춘 콘텐츠를 개발하면 그만이니까.
이건 웹툰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 문제를 만화나 게임 탓으로 간편하게 정리하는 사고의 문제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어떤 문제가 떠오를 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며 해결해야 하는데, 너무나 편협한 시각 안에 문제를 가둔다. 최근 군내에서 벌어졌던 자살사건들도 비슷하다. 군 행정의 문제점보다는 생활관 내에서 벌어진 가혹행위 위주로 사건을 확대해 언론에 뿌렸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병사들이었다.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1순위는 뭐라고 해도 당신들이 주인공인 현재의 뉴스다. 지겨울 만큼 터지는 각종 행정비리, 국회에서 벌어지는 패싸움, 선정적인 범죄 장면을 여과 없이 다루는 장면들이 뉴스에서 버젓이 방송되지 않는가?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진 시스템으로는 절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청소년을 잘 자라지 못하게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 수정해야지 그 잘못을 만화니 게임이니 하는 단일 콘텐츠에 뒤집어씌워서는 안 된다. 명백한 책임회피의 수단이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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