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삼일절 맞은 지 서른일곱 번째, 부끄럽게도 나는 태극기 한번 내걸어본 적 없다. 그렇다고 제헌절이나 광복절이라고 달랐으랴. 그저 그런 날마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몇 층 몇 층은 태극기가 걸렸네, 펄럭이네, 휘감겼네, 평가나 해댔을 뿐이니 목숨 바쳐 나라 구하신 선조들 보자시면 한탄에 혀를 끌끌 차실 노릇일 터.
변명은 아니건대, 태극기는 왜 그렇게 볼 때마다 낯이 설까. 어릴 적 아빠는 이런저런 기념일마다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로 된 까만 국기함에 반듯하게 접혀 있던 태극기를 꺼내 탁탁 털고는 아주 조심스레 걸어 맸다가 아주 조심스레 걷어 들이곤 했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굳건히 다지는 듯한 마음의 그 지극한 예의…. 아빠처럼 대한독립만세를 맞고 육이오를 겪고 월남전에 참전하지 못한 까닭에 나는 태극기의 절실함으로부터 늘 뒤로 주춤 물러섰던 건 아닐까. 국기를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되지만 국기를 가지고 입을 수는 있겠구나, 경험했던 2002년 월드컵 이후 어쨌거나 나는 태극기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태극기 4괘가 옳게 그려졌는지 시험도 참 많이 치렀건만 여전히 건곤이감 헷갈려하던 나, 자발이 아니고서 절로 뜨거워지는 애국이란 없듯, 어쩌면 우리는 국기에 대해서는 늘 맹세만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길들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태극기는 때가 타면 빨아서 말릴까, 아니면 불에 태워 버릴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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