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폭행 논란을 일으켰던 채선당 사건에 이어 또다시 인터넷 고발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한 중년 여성이 어린아이에게 뜨거운 된장국물을 쏟은 뒤 그대로 달아났다는 이른바 '된장국물녀' 논란이다.
인터넷 고발의 성격상 자신의 입장에서 여과없이 전달한 일방적 주장이지만 이에 경도된 네티즌들은 인터넷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을 전개하고 있어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된장국물녀 논란은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 내 식당에서 비롯됐다. 당시 된장국 그릇을 들고 있던 50대 여성과 허모(8)군이 부딪치는 바람에 국물이 쏟아져 허군이 얼굴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허군의 어머니는 사과는 물론 아무런 조치 없이 이 여성이 사라졌다며 얼굴에 붕대를 한 아들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이 글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이 화상 테러의 가해자를 찾게 도와달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은 네티즌의 공분을 샀고, 된장국물녀로 명명된 중년 여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인터넷에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허군의 아버지(42)는 이틀 뒤인 22일 해당 여성을 처벌해 달라며 신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온라인에서 당시 상황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중년 여성 이모(53)씨는 28일 경찰에 자진출두,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국물을 그릇에 담아 돌아서는 찰나 뒤쪽에서 달려오던 허군이 오른쪽 팔꿈치를 쳐 그릇을 놓쳤다. 다쳤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허군이 가던 방향으로 달려가버렸기 때문에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도 당시 오른쪽 손등에 화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식당 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이씨의 진술대로 사건 발생 후 허군이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당시 이씨가 된장국물이 허군에게 쏟아진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에 따라 이씨의 책임 및 사후 조치 소홀 여부를 다툴 소지는 있지만, 당초 피해자 부모가 '사고 후 뺑소니'의혹을 제기한 인터넷 글 내용과는 사실관계에서 상당부분 차이가 나는 결과다.
채선당 사건처럼 핵심 쟁점에 대한 피해자 측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CCTV 화면상으로는 사고 원인이 허군에게 있는 셈이어서 이씨의 책임 문제에 다툼의 여지가 큰 사건이다. 채선당 사건은 "채선당 종업원에게 배를 채였다"는 임산부(33)의 인터넷 글 때문에 채선당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지만 경찰 수사 결과 임산부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된장국물 테러범'으로 매도된 이씨는 "상대가 어린아이라 잘잘못과 상관 없이 비난 여론이 더 거세진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씨와 허씨의 부모는 27일 대면했으나 사실관계에 대한 입장 차가 커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이씨에 대해 과실치상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가 가려지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 확산되는 바람에 수사하는 데 고충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인터넷 고발' 사태에 대해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다수의 공감을 얻는 쪽이 강자가 된다는 생각이 진실과 윤리에 대한 사회적 상식까지 흔드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즉각적 소통을 가능하게 한 SNS 등 온라인 매체의 기술적 특징이 나쁘게 발현된 사례"라고 지적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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