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교육감 선거 앞두고후보 매수 혐의로 구속되기 전까진 그랬다. 보수 후보들이 난립한 덕에 교육자치의 핵인 서울시교육청 수장 자리를 어렵지 않게 꿰찼다. 보수의 분열이 가져온 결과다. 보수쪽이 단일 후보를 냈다면? 시민운동에 적극적이었고 "고교선택제가 뭐냐"고 출마 선언할 때 언론에 되묻기도 했던 법학 전공 교수는 대학로의 한국방송통신대 자신의 연구실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후보 매수 사건이 표면화됐을때도 이 '행운의 사나이'의 운명을 나는 줄곧 주시했다. 교육감 선거때 어느 한순간 그에게 쏠린 묘한 양기(陽氣)가 잔존한다면 혐의를 벗어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우매한 생각이었음이 곧 확인됐지만.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형이 선고되는 걸 보면서 곽 교육감이 듣기엔 거북스럽겠지만 교육감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벌금형으로는 가장 높은 3,000만원이 선고돼 상급심 재판에서 이를 뒤집기는 어렵다고 여긴 까닭이다. 물론 상급심에서 무죄를 입증할만한 새로운 증거물이나 진술 따위가 나온다면 상황이 역전될 여지도 있긴 하다.
지난달 20일 시교육청으로 돌아온 곽 교육감에게 '기대'라는 단어는 속절없다고 봤다. 다만 입시에 찌들고 무한경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학생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신참 교육감의 교육철학 만은 온전히 정책으로 반영됐으면 바랐다. 그가 2년 여 동안 벌려놓은 여러 건의 교육혁신 방안들이 중단되지 않고 추진되기를 희망했고, 소모적인 논란도 없었으면 했다.
그런데 이런 바람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교육감 복귀 뒤 그는 가만있지 않았다. 두 가지 사안으로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느닷없이 사립 중고교 교원채용 개선안을 내놓았고, 비슷한 시기에 비서진을 편법ㆍ특혜 승진시키는 식의 '인사 꼼수'를 부린 것이다.
곽 교육감은 사립학교의 교사 채용 비리가 여전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래서 교원인사위원회 위원의 과반수를 반드시 선출로 구성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립학교 교원인사위원회 운영 내실화 계획'을 마련했는데, 이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교장이 직능별 대표를 활용하는 식으로 교원인사위 위원을 임명하도록 한 학교 정관을 무시한 처사다. 법으로 보장된 사학의 자율성을 행정기관이 안중에도 안 두겠다는 독선이다. 채용 비리 운운하는 것도 현실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일부 학교에서 채용의 불투명성이 이따금 목도되고 있긴 하지만, 이를 전체 사립 중고교로 범위를 넓히는 것은 위험하다. 이러니 '사학을 죽이는 좌파 교육감'이니, '사립학교의 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나.
최근의 인사 관련 잡음은 사립 학교 교원 채용 개선안을 무색하게 만들 따름이다. 비서실 7급 계약직원 5명을 승진시키려고 사표 받은 뒤 6급으로 다시 채용하겠다거나, 자신의 측근을 기용하기위해 비서실에 자리 두 개를 더 만들려는 시도는 명분이 없고, 설득력도 약하다. 안그래도 선거캠프 출신 해직교사 2명을 공립고 교사로 특채해 말썽인데, 또 '나대로 인사'를 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교육감이 선출직이다보니 보은 인사, 측근 챙기기 인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을 넘어선 곤란하다. 교원인사위라는 공정한 선발 장치가 있는 사립 중고교를 손 보겠다면서 한쪽에선 인사 규정을 바꿔가면서까지 측근들을 챙기는 행위는 곽 교육감이 추구해 온 '정의'니, '법치'와는 맞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이 정치판은 아니지 않나. 오죽하면 서울시교육청 공무원노조가 "곽 교육감은 비서실 확대와 사(私) 조직화 음모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성명까지 냈겠는가.
항소심 재판을 앞둔 곽 교육감의 심정은 착잡할 것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행여 자신이 그만두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자기 사람을 심겠다고 판단했다면 100% 착각이다. 시스템만 잘 갖춰놓으면 후임자가 누가오든 정책은 제대로 가는 법이다. 인사를 신세 갚는 행위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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