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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골육상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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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골육상쟁

입력
2012.02.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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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煮豆燃豆箕ㆍ자두연두기)/ 가마솥 속에 콩이 우는구나(豆在釜中泣ㆍ두재부중읍)/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本是同根生ㆍ본시동근생)/ 어찌 이리도 지독하게 볶아대는가(相煎何太急ㆍ상전하태급).' 중국 삼국시대의 간웅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지은 칠보시(七步詩)다. 조조가 죽은 뒤 큰아들 조비는 왕위를 차지한 후 선친이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동생 조식을 핍박했다. 조비는 동생의 측근들을 다 제거하자 마지막으로 조식을 불렀다.

■ 조비는 많은 궁인들 앞에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형제를 주제로 시를 짓되 형(兄)자나 제(弟)자를 넣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여덟 걸음째 네 목을 치리라"라고 명을 내렸다. 당대의 문장가였던 조식은 정확히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처연한 자신의 처지, 살벌해진 형제관계를 힐난하는 시를 읊었다. 조비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조식을 살려줬다. 그렇다고 조식을 자유롭게 풀어준 것은 아니었다. 조식은 삼엄한 감시 속에서 시를 지으며 불우하게 살다 갔다.

■ 권력을 놓고 혈육 간 다툼이 벌어지는 골육상쟁(骨肉相爭) 중에서 조비와 조식의 경우는 그나마 멋스럽다. 대부분 처절한 살육이 벌어져 인간성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 한다. 조선 개국 공신인 이방원만 해도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중국 당의 개국 공신인 이세민도 태자인 친형과 동생을 죽이고 대권을 차지했다. 심지어 아들과 딸을 죽인 당의 측천무후, 조카 단종을 죽인 조선의 세조 등 처참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정치권력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없게 됐고 세습도 불가능하게 됐다. 대신 자본주의가 무한대로 확장하면서 돈의 힘이 엄청나게 커졌고, 이를 둘러싼 골육상쟁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내 20대 그룹 중 경영권 승계나 계열분리를 마무리한 그룹이 13개인데, 이 중 10곳에서 혈육 간 다툼이 벌어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요즘, 대표기업인 삼성의 일가마저 상속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참으로 민망하고 추하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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