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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사회를 믿지 않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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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사회를 믿지 않는 아이들

입력
2012.02.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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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고교생의 절반이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한 연구기관의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집계를 인용한 한 보도에 따르면 조사대상 학생들 가운데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고 응답한 학생은 초등에서 중등과정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비율이 높아지다가 고3이 되면 58% 선에 이른다. 우리나라 정치체제가 잘돼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 비율은 초등 4학년 83%였다가 고3에 이르면 17%로 추락한다.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낮아진다.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자기 나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통합'과 '소통'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주목해야 할 중대한 사회적 역기능 지수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사회를 보는 청소년들의 눈이 이처럼 부정적이고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이 보기에 어른 사회는 청소년들이 처한 곤경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 청소년 자살, 우울증, 학업중도포기, 학교폭력 같은 사태를 거의 매일 다반사로 접하면서도 문제를 풀어주려는 노력에는 너무도 인색한 것이 어른 사회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 관점은 전혀 무리한 것이 아니다. 자기들의 곤경을 해소해줄 의사가 없어 보이는 사회를 청소년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사회에 대한 청소년 시각이 긍정적일 수 있겠는가. 그들은 묻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멍들고 비뚤어지고 죽어가야 어른들은 정신을 차릴 것인가"라고.

청소년들에게서 제기되는 이 신뢰의 위기는 장기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문화의 어떤 현안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강 건너 불도, 남의 집 불구경도 아니다. 자기가 나고 자란 사회를 신뢰하지 못할 때 아이들의 가슴에는 분노가 쌓이고 그 분노는 증오와 원한을 키운다. 아이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와 증오의 폭탄을 안고 자라야 한다면, 장차 그들이 사람 살만한 사회, 소통의 사회, 고신뢰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내는가가 사회의 미래를 좌우한다. 사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어른들을 믿지 못할 때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고,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은 어디 가서도 당당한 인간으로 서기 어렵다.

청소년들을 괴롭히는 고통의 주 원인이 입시경쟁을 위한 고강도 학업 스트레스라는 것은 이미 나와 있는 진단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곤경을 해소해주기 위한 첫 번째 처방은 '교육개혁'이다. 아이들은 천천히 자란다. 성장의 시간이 느리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교육이라는 것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오랜 지혜다. 천천히 자라게 하라. 충분히 쉬고 놀고 잠잘 시간을 주라. 여유를 주고 자유롭게 상상할 시간을 주라. 200년 전 조선시대 사람 이덕무가 맹자의 말을 빌어 충고한 것이 있다. 아이가 글자 200자를 깨칠 능력을 보이거던 100자만 깨치게 하라. 그런데 지금 우리는 100의 능력을 보이는 아이에게는 200을 요구하고, 200의 능력을 가진 아이에게는 300을 강요한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멍들고 부러지고 죽는다. 이런 방식의 망국교육을 뜯어고치는 것, 그것이 교육개혁이다.

그런데 그 교육개혁이 왜 그리 어려운가. 사회가 교육개혁을 원치 않고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개혁을 불가능하게 하는 더 근본적인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일에 나서는 것, 그것이 청소년 곤경을 풀어줄 두 번째 방도이다.

사회는 적자생존, 경쟁제일주의, 승자독식 같은 신판 사회 다위니즘적 체제, 제도, 이데올로기, 정신상태에서 벗어나 환골탈태의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 어렵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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