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아니면 가장 좋았던) 영화는?"영화 담당기자를 오래 했고, 그 인연으로 평론가란 소리도 듣게 됐고, 영화 책까지 몇 권 썼다는 이유로 대화 말미에 으레 받는 질문이다. 얼마 전에도 의정부에 있는 고등학생들이 숙제라며 몰려와서는 저자 인터뷰를 한답시고 이렇게 물었다."이 영화도 좋고, 저 영화도 감동적"이라는 태도가 못마땅했나 보다.
난감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왜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지, 최고는 무조건 하나여야 하는지. 주저 없이 "이 영화가 최고"라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가 많은데도 "올해 최고"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의 무모함과 용기가 부럽다. 모든 것에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고, 호와 불호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으면 진정성과 전문성을 의심하는 풍조가 예술에까지 물든 것 같아 씁쓸하다.
영화는 장르마다, 작품마다 나름대로 맛과 특색이 있다. 같은 영화라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무슨 감정으로 봤느냐에 따라 느낌과 감동도 다르다. 나이에 따라, 인생에 따라 얼마든지 최고의 영화는 달라지고, 바뀌고, 새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도 굳이 하나만 꼽으라고 강요하면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1982년 앨런 파큘라 감독의 <소피의 선택> 이다. 소피의>
작품성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분노 때문도, 감동 때문도 아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의 끔찍한 만행을 고발하고, 그 지옥에서도 피어나는 휴머니즘을 전한 영화는 <소피의 선택> 말고도 많다. 어린 아들과 딸 중에서 가스실로 보낼 아이를 결정해야 하는 주인공 소피와 그 역을 맡은 배우 때문이다. 엄마에게 이보다 잔인할 수 없는 선택 앞에서 '미친 듯이' 오열하고 애원하는 소피,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선택에 '미친 듯이' 괴로워하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소피를 끔찍하게 연기한 메릴 스트립을 잊을 수가 없다. 소피의>
그녀의 나이 서른 셋.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1977년 <줄리아> 로 영화에 입문한 그녀는 단 한 번도 '예쁜 배우'는 아니었다. 대신 <디어 헌터> <아웃 오브 아프리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가 말해주듯, 어떤 주어진 역할도 온몸을 녹여버리는 열정과 깊이의 배우,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배우이다. 작품마다 강렬한 카리스마, 뛰어난 변신으로 그녀가 우리를 매료시키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악마는> 매디슨> 아웃> 디어> 줄리아>
그렇게 환갑을 넘긴 아름다운 배우 메릴 스트립이 <소피의 선택> 에 이어 30년 만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다시 한 번 거머쥐었다. 모두 열일곱 번의 수상후보에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의 여우조연상까지 더하면 세 번의 수상이니 2년이 멀다 하고 아카데미의 초대를 받은 셈이다. 그것을 의식한 듯 시상대에서 그녀는 "사람들이 '또 메릴 스트립이야?' '왜, 또 그녀야?'라고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크레이머> 소피의>
그러나 영화 <철의 여인> 을 본 관객이라면, 아카데미가 왜 또 그녀를 선택했는지 알고도 남을 것이다."어쩔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야말로 마거릿 대처 자체였다. 가발과 보철, 분장으로 흉내낸 외모 때문이 아니다. 치매에 걸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그녀의 오늘과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로 주변의 우려와 비웃음을 극복하고 경제 위기와 사회갈등에 빠진 영국을 부흥시킨 그녀의 당당한 어제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철의>
영화를 보다 보면 메릴 스트립 역시 철새처럼 포퓰리즘에 영합하기보다는 인기 없어도 옳은 것을 선택하는, 편법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굳게 지킨 '철의 여인'이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대처가 총리가 되어 11년 반 동안 영국을 이끌고, 메릴 스트립이 아카데미에서 세 번이나 수상하게 된 비결은 같다. 그러니 함부로 "또 그녀야"라고 말하지 마라.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내치고 바꾸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격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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