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 인사팀 김주영 차장은 출근하자마자 개인 사물함에서 그날 업무를 위한 서류와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칸막이가 없는 평상 중 빈 자리를 하나 골라 앉고, 주변에 앉아 있는 선후배 동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지난해 8월 유한킴벌리가 '스마트 워크'의 일환으로 사무실에 고정좌석을 모두 없애고 업무공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오픈 오피스' 제도를 도입한 지 반년이 지났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자기 자리가 없어진다' '한 팀인데 흩어져서 근무한다'는 불만과 우려가 있었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직원들이 '참 잘 도입한 제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 차장은 "전에는 같은 팀 내에 있는 동료들만 잘 알았지만 지금은 다른 부서 임직원들과도 안면이 트여서 업무 협조가 매우 잘 된다"고 전했다.
가장 큰 성과는 업무효율의 향상이다. 흩어져서 근무하면 능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시행 결과는 반대였다. 예컨대 ▦기본업무공간 ▦라운지형 자유근무공간 ▦집중업무공간 등으로 공간을 구분함으로써 스스로 업무효율을 극대화하는 장소를 골라 업무를 볼 수 있었고, 그날 밀접하게 대화해야 할 동료 인근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유용했다. 한 직원은 "높은 칸막이가 있는 고정좌석은 불필요한 책이나 서류, 도구 등을 쌓아놓아 산만하고, 업무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할 때도 있지만, 칸막이가 없는 평상에서는 남의 눈도 있기 때문에 더 업무에 집중하게 된다"면서 "결과적으로 야근을 할 필요가 없게 돼 일찍 집에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협업 기회가 늘어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다른 팀의 당면 과제나 업무, 개개인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면서 업무와 관련한 불필요한 오해가 줄었고, 다른 동료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청취해 업무에 반영하게 됐다는 것. 공용 공간인 라운지는 작은 음악회, 비전 아카데미, 사내 세미나 등을 함께 하면서 직원들 간 교류의 장으로 떠올랐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임원과 똑같이 평상에서 일하면서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됐고, 결재 등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진 것도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전했다.
업무효율이 향상되고 직원 간 소통이 활발해진 것이 주된 성과라면 '그린 오피스' 구현은 '덤'으로 따라왔다. 높은 칸막이가 없어지자 사무실이 탁 트여 공기 질이 좋아졌고 냉난방 효율이 향상됐다. 밤에는 7시 반이면 모두 소등하고 야근자를 위해 1개 층만 개방해 에너지를 절약한다. 개별 좌석이 있을 때는 야근자들이 각 층에서 근무했지만, 노트북을 들고 '야근 층'으로 모여 근무할 수 있게 된 것. 또 각 팀별로 있던 팩스와 복사기를 한 층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면서 불필요한 인쇄를 하지 않게 됨에 따라 종이 사용도 종전의 50%로 절감됐다.
물론 '오픈 오피스' 제도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은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피로감 역시 높아졌다고 호소한다. 때문에 최대한 야근을 안 하도록 하고, '펀(fun) 경영'의 일환으로 작은 음악회를 여는 등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실험이 성공했다고 알려지면서 벤치마킹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한솔그룹과 최근 과천에서 강남으로 본사를 옮긴 코오롱FnC 역시 유한킴벌리의 사례를 연구해 고정좌석을 없애고 공용 공간을 늘린 '스마트 오피스'를 선보였다. 유한킴벌리부터 시작한 '사무실 혁명'이 계속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다만 유한킴벌리의 '사무실 혁명'은 오래 전부터 ▦4조2교대제 ▦시차출근제 ▦가족친화경영 등을 실험하며 근무환경 혁신을 선도해 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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