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도 실력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을 달콤한 결과로 만들었다.
재미동포 존 허(22ㆍ한국 이름 허찬수)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마야코바 클래식(총상금 370만 달러)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PGA 새내기 존 허는 27일(한국시간) 멕시코 리비에라 마야의 엘 카멜레온 골프장(파71ㆍ6,923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6개로 8타를 줄여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를 기록, 로버트 앨런비(호주)와 동타를 친 뒤 연장 8번째 홀인 10번홀(파3)에서 우승을 확정했다. 우승 상금은 66만6,000달러(약 7억5,200만원).
그는 최경주(SK텔레콤ㆍ8승)와 양용은(KB금융그룹ㆍ2승), 앤서니 김(나이키골프ㆍ3승), 케빈 나(타이틀리스ㆍ1승)에 이어 한국(계) 선수로는 5번째로 PGA 투어 우승자가 됐다. 한국(계) 선수로는 PGA 통산 15승째다.
경쟁자가 무너지는 행운
존 허는 3라운드까지 선두에 7타나 뒤진 공동 13위에 머물렀다. 최종 라운드에서8언더파의 맹타를 휘둘렀지만 단독 1위 앨런비가 2타 차로 앞서 있어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앨런비가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2타를 잃으면서 연장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8번홀과 10번홀(파3)을 오가며 열린 연장 승부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결국 8차 연장 승부인 10번홀에서 앨런비가 먼저 보기를 범했고, 존 허는 침착하게 파로 마무리했다. PGA 투어에서 1983년 이후 29년 만에 연출된 8차 연장은 사상 두 번째로 긴 연장전이다. 역대 최다는 1949년 모터시티오픈에서 나온 11차 연장전이다.
행운의 PGA 진출
199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존 허는 곧바로 한국에 돌아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미국 시카고로 떠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골프에 매달렸다. 공을 몰래 주어 연습을 하다 관리원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존 허는 13세 때 시카고에서 열린 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한 뒤 초청받아 출전한 일본 대회에서도 우승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도피성 이민을 떠난 아버지 허옥식씨는 노동을 하면서 아들을 뒷바라지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어려운 생활을 계속했다. 존 허는 2008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 투어(KGT) 외국인 퀄리파잉(Q)스쿨을 통해 국내 무대에 진출했다.
경비를 줄이려고 아버지 허옥식씨가 캐디를 맡았다. 하지만 골프 규정에 익숙하지 않은 허씨는 2009년 삼성베네스트오픈 때 너무 힘이 들어 카트를 타고 이동하다 벌타를 받기도 했다.
2009년부터 3년간 KGT에서 활약한 존 허는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서울 강북구 미아리에서 골프백을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 타면서 분당까지 이동해 연습한 끝에 거둔 값진 우승이었다.
지난해 PGA 투어 Q스쿨에 응시한 그는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기록, 27위로 밀려나 25위까지 받을 수 있는 합격증을 날린 줄 알았다.
그러나 앞선 순위에 있던 선수 2명이 다른 자격으로 2012시즌 출전권을 받아간 덕에 PGA 투어 출전 티켓을 가까스로 얻었다.
PGA 투어 데뷔 해 5번째 대회에서 우승한 존 허는 "꿈이 이뤄졌다. 투어에서 뛰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고 이제 우승까지 해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기뻐했다.
존 허는 시즌 상금 104만7,132달러(약 11억8,000만원)를 쌓아 상금랭킹 30위에서 9위로 껑충 뛰었다. 페덱스컵 순위에서도 458점을 획득해 33위에서 12위로 올라섰다.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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