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취임 4주년을 맞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에는 반성이나 사과의 말이 없었다. 임기 말만 되면 모든 책임과 비난이 힘 빠진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마련이지만 요즘 시중의 민심은 어느 정권 때보다 흉흉하다. 거기에 대고 먹고 살기 힘든 게 세계 금융위기 탓이요, 그나마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대처했다는 자화자찬 양념까지 쳤으니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안 쏟아지면 오히려 이상하다.
인의 장막에 싸인 구중궁궐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심정 탓에 애써 현실을 보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1년 뒤 퇴임해 서울 논현동 사저로 돌아가 차분하게 임기 5년을 돌아보면 이런저런 후회가 적지 않을 터이다.
한바탕 푸닥거리가 불가피해 보이는 형님 문제를 포함한 친인척 관리,'고소영ㆍ강부자'논란으로 집권 초부터 정권의 힘을 뺀 인사정책, 한미관계 복원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피해 갔을지도 모를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시위 사태 등등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가슴 치며 아쉬워할 일은 대북정책이 아닐까. 취임 4주년 특별회견에서는 남북관계의 잘못된 틀을 바로잡는 데 상당히 중점을 뒀고, 그런 점에서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지난 4년 남북관계는 몇 차례 반전의 기운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20~30년 전의 대결시대로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대통령 자신이 현대건설회장 시절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시베리아와 연해주를 누비며 가꿨던 북방진출의 꿈에 비춰 보면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그 시절 구상했던 북방진출 구상들은 초선의원 때인 1995년 쓴 자서전 에 잘 나와 있다. 자원과 내수기반이 취약한 우리가 왜 북한과 함께 북방, 즉 시베리아와 연해주로 가야 하는지, 고임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북한 진출 효과,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해 유럽 인도 중동으로 가는 새로운 실크로드 개척, 시베리아 가스전을 개발해 북한을 거쳐 육로로 들여올 경우의 이익 등.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들의 원형이 거기에 다 들어 있다.
의지와 지혜가 있었다면 북한과 함께 북방으로 가는 길은 이 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열어갈 수 있었다. 보수정권인 만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보다는 국내 보수세력의 반발이 훨씬 적었을 것이다. 과거 서독 시절 보수 기민당 정권은 자신들이 비난해 마지않던 사민당 정권의 동독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 마침내 통일을 이뤄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비핵개방 3,000'정책에는 북방 진출구상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북한이 달라지면 도와주겠다는 비현실적 전제가 문제였다. 북한 정권은 변화를 향해 나아갈 때 직면할 체제 불안정에 대해 의심과 걱정이 많은 집단이다. 말로는 상생과 공영을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급변사태와 북한 붕괴론을 끊임없이 제기해 그들의 불신과 의심을 가중시켰다. 지난 4년 남북관계 악화에는 북한의 책임도 크고, 운이 안 따라준 면도 없지 않지만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본인의 의지와 철학 부족 탓인지, 그의 꿈을 뒷받침해줄 참모와 세력의 부재 탓인지 모르지만 이 대통령은 자신의 꿈을 자서전 속에서 끌어내 현실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간직했던 북방진출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확보해야만 하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길이고, 우리가 당면한 숱한 문제를 풀어가는 출구이기도 하다.
여야의 차기 대선주자들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와 취업난, 저출산 고령화, 복지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휴전선 이남에 갇혀서는 그게 그거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자는 기만에서 벗어나 진정한 출구가 필요하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력이 뒷받침되는 북방 진출의 꿈으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할 차기 주자는 없을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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