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10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우리 '오쉬노' 부대가 사용할 새로운 주파수교란장비에 대한 성능시험(수락검사) 현장. 주파수교란장비는 리모콘 등 원격조종에 의한 폭발물의 주파수를 교란시켜 폭발을 막는 첨단 장비다. 이날은 새 장비가 실제 작전에 투입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최종 시험자리였다. 그런데 대테러차량인 험비에 장비를 장착해 실험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장비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현지 온도보다 30도나 낮은 환경이었다. 냉각장치에 문제가 있어서였다. 정상적인 장비라면 그 보다 3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12시간 이상을 버텨야 했다.
그런데도 당시 성능시험 책임자였던 방위사업청(방사청) 편제장비사업팀 소속 A(43) 중령은 이 장비를 합격시켰다. 시험 현장에 있던 방사청과 군수사령부 관계자, 폭발물 전문가 등의 우려에도 "험비에서 떼내어 다시 시험해보자", "이 정도면 문제가 없다"며 이의제기를 묵살했다.
알고 보니 단일 수의계약으로 장비를 납품한 업체가 값싼 중국산 부품을 써 엉터리로 만들었고 A 중령은 이 장비의 성능불량을 눈감아준 결과였다. 업체 대표 김모(33)씨는 실제 들어간 비용보다 4배나 부풀린 10억3,500만원을 정부로부터 납품대가로 챙겼다.
비리는 수의계약 과정에서부터 있었다. 특수임무부대에서 7년간 폭발물 처리를 하다 2006년 말 전역한 부사관 출신인 김씨의 군 내부 인맥이 힘을 발휘했다. 아프간과 환경이 비슷한 레바논 동명부대에 근무하던 B(35) 소령과 C(37) 상사가 현지에서 사용하는 장비의 주파수 차단대역, 장비 제원표, 안테나 배치표 등 대외비 군사정보를 김씨에게 이메일로 흘려줬고 수의계약을 딸 수 있게 도왔다.
이렇듯 군 안팎의 비리가 만들어낸 엉터리 주파수교란장비 5개는 자칫했으면 지난해 12월부터 아프간 현지 작전에 투입돼 사용될 뻔 했으나 같은 해 9월 첩보를 입수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꼬리를 잡혔다.
경찰은 김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김씨를 도운 A 중령 등 군인 4명을 직권남용, 직무유기, 군사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넘겼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김씨가 이전에도 공항에서 쓰이는 폭발물 감지장치 등 25개 장비를 군과 정부에 납품한 전력이 있어 이에 대한 비리 여부와 군납 브로커의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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