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로 있던 수년 전의 일이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이 자리잡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사거리 건널목에서 녹색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박 변호사를 봤다. 양복 차림에 등에는 백팩(Backpack)을 멘 모습이어서 더 유심히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이나 백팩을 메던 때인지라 '머리도 벗겨진 분이 참 젊게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주변 행인들마저도 힐끔 쳐다볼 정도였다. '백팩 멘 직장인'은 최근에야 대거 나타났으니 박 시장이 3, 4년은 앞서갔던 셈이겠다.
'백팩 멘 박원순'을 끄집어 낸 것은 앞서가는 실용의 자세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유명인, 특히 정치인의 차림새나 이미지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그러니 그 차림새를 놓고 논란이 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과거 지방자치단체 선거 당시 서민 정당을 내세웠던 한 정당의 여성 후보는 강남의 유명 부티크에서 선거용 옷을 맞춰 입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재래시장을 찾은 이 대통령의 손녀가 입은 패딩 외투가 프랑스제 유명 제품이어서 논란이 뜨거웠던 것도 지난 1월의 일이다.
지난달 말 맹추위 속에 18km에 이르는 서울 성곽 점검에 나선 박 시장의 차림새는 매우 뜨악했다. 박 시장이 입은 아웃도어복이 하필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노스페이스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값이 꽤 나간다는 고어텍스 제품이었다.
물론 노스페이스는 대중적이다. 누구나 다 입는다. 노스페이스를 걸친 사람들을 보지 않고는 길거리를 지나갈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압수수색을 하는 검찰 수사관마저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중적일 수 없는 가격임에도 대중적이 된 데는 과시 경쟁이 작용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특히 중ㆍ고교생 사이에서 빚어지는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복으로까지 불려지고 있으니 서민 부모들은 자식 기를 꺾지 않으려 수십 만원이나 하는 노스페이스를 사 입히다 등골이 휜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환금성까지 좋다 보니 노스페이스만 골라 빼앗는 불량 청소년들의 먹잇감이 되곤 한다. 신문이나 방송이 이러한 부작용을 지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씩 기자들과 함께 등산을 하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을 오를 때면 국산 메이커의 아웃도어복을 입었다고 한다. 그것도 대기업 브랜드가 아니라 중소기업 제품이어서 청와대 출입기자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대중의 눈을 의식한 노 전 대통령의 고려가 있었거나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던 측근들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보름 전 서울시는 '희망 서울 부패근절 종합대책'의 하나로 '공직자 목민심서'를 제정한다고 발표했다. 임용장을 받는 순간부터 퇴직 이후까지 법률에 정할 수 없는 세세한 행동강령과 바람직한 행동윤리규범을 모두 담아낸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시민들이 공직사회에 기대하는 윤리 수준은 높아졌지만 이에 상응할만한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공직자 행동윤리규범이 없는 실정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다산이 를 지을 적에는 단지 관리의 부정부패만을 경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산은 서문에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득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는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썼다. 다산이 굳이 '고운 옷'을 말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억측일지 모르나 서민들의 눈에 그대로 보이고 대비가 되기 때문이었을 걸로 생각한다. 제대로 된 목민관이라면 백성의 어려움을 돌보고 살피는 데 만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박 시장도 옷차림부터 다시 한번 살펴보고 바깥 행차에 나서길 권한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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