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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전문가들이 전문적이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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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전문가들이 전문적이지 않다면

입력
2012.02.2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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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자제의 병역 비리 시비는 문제를 제기했던 강용석 의원의 사퇴로 귀결되었지만, 그 와중에서 보다 근원적이고 심각한 문제 하나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강 의원이 공개했던 MRI(자기공명영상) 사진을 놓고 전문가로서의 위치를 내세워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의혹의 목소리를 더했던 일부 의학자들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번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일부 '전문가'들의 문제를 사회적 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뢰'의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주장과 견해는 각자의 잇속과 계산에 따라 갈리기 십상이기에 이들이 목청 높여 외쳐대는 이야기들도 액면 그대로 잘 믿을 수가 없다. 다행히도 여기에 전문가라는 이들이 존재한다. 인간사의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이편 저편의 잇속이 끼어들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엄정하고도 탄탄한 전문성의 논리로서 최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오로지 그 전문성의 논리 하나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라는 사회 전체의 암묵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비록 모든 문제들에 다 전문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인간 세상의 밑둥과 기둥에 해당하는 중요한 분야들에 있어서는 이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이 내놓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의 객관적 지식과 정보 및 판단을 기초로 삼아 우리는 끝없이 갈리기만 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억설을 넘어서서 최대한 많은 이들의 합의와 사회적 신뢰의 근간을 마련할 수가 있게 된다.

이제 이번 사건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일부 의학자들의 행태를 성찰해보자. 우선 이 문제는 그야말로 판단 여하에 따라 해당 개인들의 삶의 파괴는 물론이요 한국 사회에 중대한 정치적 파장까지 미칠 수 있는 첨예하기 짝이 없는 문제였다. 게다가 그 판단이 달려있는 것은 사람마다 어느 정도씩 달라서 도저히 일치를 볼 수 없는 이념이나 윤리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개인이 자신의 질병을 속였는가 아닌가라는 객관적 사실의 문제였다. 따라서 이 문제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전문가들인 의학자들은 판단과 발언에 극도의 조심을 요할 수밖에 없고,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분명한 자료와 근거에 철저하게 준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강 의원의 의혹 제기가 이렇게 전면적 관심을 얻게 된 것은 일부 의학자들이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던 게 계기였다고 할 정도로 이들은 일찍부터 대담한 추측과 입론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의 주장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사실과 다름이 밝혀지고 말았고, 그 결과 발군의 멧집을 자랑하던 국회의원 한 명이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그 '전문가'들의 반응은 간단한 사과 혹은 침묵이 다였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사회적 신뢰를 돌이킬 수 없게 잠식해 버린 매머드 급 진실 게임을 줄줄이 홍역처럼 치러야 했다.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 4대강 사업의 정당성, 천암함 사건의 진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의 실체 등등. 이 사건들마다 1급으로 여겨지는 전문가들이 나서서 입장을 밝혔지만 그들 사이의 주장도 정면으로 모순되었고 사람들은 어느 새엔가 '전문가'도 별로 '전문적'이지도 '불편부당'하지도 않으며 그저 저잣거리의 갑남을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 사건들에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가 판연히 드러나게 되는 날,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와 경제의 신뢰에 가져올 결과가 나는 무척 두렵다.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찰나이지만 이를 복원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는 공공의 자산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소중히 보존하고 확장할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들은 사회가 자신들에게 주는 대우와 존경이 그것을 반대급부로 하는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한다.

홍기빈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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