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로 영세 상인들 매출이 40%나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일보 취재팀이 이달 9~26일 서울과 경기 일산ㆍ파주 등지의 골목상권을 둘러본 결과, 장사가 될 만한 곳이면 초대형 아웃렛부터 카페형 빵집,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신경망처럼 뻗어 있었다. 특히 심층 면접한 영세 상인 40명은 대기업 진출 이후 매출이 평균 37.9%, 고객 수는 40.4%나 줄어들어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기 고양시 덕이동 로데오와 화전 패션로데오 등 기존 소형 아웃렛 상권의 매출(-45.3%)은 1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났다. 작년 3월과 12월 파주 신세계첼시 프리미엄 아웃렛과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고객들을 대거 흡수했기 때문이다. 결국 덕이동 로데오에 입주했던 96개 상점 중 절반이 넘는 49개가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해 최근 3개월 새 문을 닫았다.
동네 빵집들도 고사 일보 직전이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면 전국의 동네 빵집 수는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대형 프랜차이즈의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2007년 8,030개에서 2011년 4,250개로 절반이나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09년 SSM 진출 이후 동네 슈퍼 매출이 평균 34.1% 감소했으며, 상인의 41.2%가 6개월을 버티기 어렵다고 응답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영세 상인들은 재벌 계열사들이 마구잡이로 골목상권을 잠식해 들어오는데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상계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51)씨는 "동네 슈퍼가 반경 100m 이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SSM은 500m 이상이어서 경쟁이 안 된다"며 "국산품 애용이다 기업 육성이다 해서 국민 돈으로 키워놓은 대기업들이 서민들의 목을 죄고 있는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주변의 한 상인은 "재벌 기업은 매년 수십 조원씩의 순이익을 남기는데 동네 상인들은 말라 죽어가는 게 정상적인 나라냐"면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세금은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영세 상인 보호에는 인색한 정부에 폭탄이라도 날려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전문가들은 중소상인 적합업종을 지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고 중소 상인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서중 대한제과협회장은 "플라이급 선수를 헤비급 선수와 싸우도록 방치하는 게 공정사회냐"면서 "정부의 중재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윤(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 인턴기자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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