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밥이랑 김치 하나 달랑 놓고 먹어. 집사람은 반 년 전 쓰러졌는데 병원에도 못 가고 누워있는 신세지."
서울 북아현동에서 라는 빵집을 운영하며 '제빵왕'으로 불리던 장민식(가명ㆍ69)씨. 그는 30여년 전 빵집 에 종업원으로 들어가 기술을 배웠고, 아내와 부지런히 돈을 모아 그 가게를 직접 인수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빵 반죽을 주무르는 힘든 일이었지만, 몰려드는 고객들 덕에 피곤한 줄 몰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하루 매출 150만원을 거뜬히 올렸다. 빵은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고, 머지않아 꿈에 그리던 내 집도 장만했다. 맛있고 신선한 빵을 구워내며 동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그를 주민들은 '제빵왕'이라 불렀다.
그는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미래가 열리리라 믿었다. 하지만 네 식구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3년 그의 가게 앞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오면서 하루 평균 100만원에 육박하던 매출이 금세 반토막 났다. 단골 고객들은 멋진 인테리어와 아늑한 의자를 갖춘 카페형 빵집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가격을 낮추고 몸도 더 낮췄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공격적으로 빵집을 늘려갔고, 매출은 어느 새 30만원 밑으로 떨어져 재료 값과 인건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눈물을 머금고 직원 7명을 다 내보낸 뒤 가족들만으로 빵집을 꾸렸지만 사정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제빵 기계를 내다 팔고 빚까지 얻어 빵집 자리에 슈퍼마켓을 다시 열었다. 25년간 빵집을 하며 신뢰를 쌓아온 동네이니 단골만 잡아도 먹고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기업 계열 편의점이 들어섰다. 깨끗하고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7개월 만에 또 가게를 접어야 했다. 집을 처분했지만 2,500만원의 빚이 남았다.
평생 빵 반죽을 하며 살아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6년 전 지인의 소개로 수원의 한 대형마트에 일당제 제빵 기사로 들어갔다. 세상 물정을 몰랐던 그는 자기가 망한 이유를 거기서 깨달았다고 했다. 동네에서 사라진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많아 제빵 기사도 1년 만에 그만 둬야 했다.
그는 지금 일용직으로 연명하며 46㎡(14평형)짜리 월셋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산다.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합쳐도 월세(30만원)를 내기 어려워 30대 아들과 딸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보태 준다. 그의 사정이 딱했던지 동네 주민은 기자에게 "건물 청소원 자리라도 알아봐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장씨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대기업에 대한 분노로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프랜차이즈 빵집, 편의점 등 대기업과의 싸움 끝에 남은 건 빚뿐이네요. 이 동네 나이 마흔 넘은 사람은 다 내 빵 먹으며 공부하고 일했는데…."
김민호(한양대 경영학부 4) 인턴기자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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