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만 년 뒤 Y염색체를 가진 남성은 지구 상에서 사라진다.'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특히 남성들이 들으면 펄쩍 뛸 얘기지만, 미국의 저명 과학학술지에 관련 논문이 버젓이 실렸던 주장이다. 이름하여 '수컷 멸종설'이다.
인간의 성(性)은 X, Y염색체의 조합으로 결정된다. 난자는 X염색체만, 정자는 X와 Y염색체 중 하나를 갖는다. 성염색체가 모두 X인 난자와 정자가 만나면 여성(XX)이, X와 Y염색체가 결합하면 남성(XY)이 태어난다. 사람은 성염색체 둘을 포함해 모두 46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염색체는 유전자 덩어리다.
3억2,000만년 전 X와 Y염색체가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둘의 유전자 수는 비슷했다. 그런데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오늘날 남성 Y염색체의 전체 유전자 수가 80여개라고 발표했다. 반면 X염색체의 유전자 수는 1,100여개로 나왔다. 크기도 차이난다. Y염색체의 크기는 3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 X염색체는 이보다 세 배 크다.
연구진이 설명하는 Y염색체 퇴화의 원인은 간단하다. Y염색체는 '짝꿍'이 없다. 외톨이다. 다른 염색체는 여성의 성염색체(XX)처럼 같은 것끼리 짝을 이뤄 염색체 유전자가 고장 나면 짝꿍 염색체의 유전자를 이용해 고친다. 하지만 짝꿍 없는 Y염색체는 유전자에 결함이 생겨도 고칠 방법이 마땅치 않다. X염색체와 붙긴 해도 겹치는 유전자는 매우 적다.
이 때문에 Y염색체는 유전자 손실이 계속 일어나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란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이들은 성염색체가 아닌 일반 염색체가 Y염색체를 대신할 거라고 본다.
Y염색체 유전자는 종종 질병에 의해 없어지기도 한다. 김연수 인제대 식의약생명공학과 교수는 "백혈병, 전립선암, 골수암 등에 걸린 남성의 Y염색체에서 유전자 일부가 없어지는 일은 빈번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학학술지 23일자에 Y염색체의 시한부 운명론을 뒤집는 강력한 반론이 나왔다. Y염색체는 쪼그라들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워싱턴대 등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Y염색체가 X염색체와 유전자 교류를 하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남성 유전자가 X염색체 안에 들어가면 원치 않는 변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남성 유전자(male-determining gene)'로 거의 채워진 Y염색체에선 꾸준히 유전자 손실이 일어났고, 이제 남은 남성 유전자는 19개뿐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Y염색체의 유전자 손실이 지금은 멈췄다고 보고했다. 그 근거는 인간의 Y염색체 유전자가 붉은털 원숭이, 침팬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진화 과정에서 붉은털 원숭이는 2,500만년 전에, 침팬지는 600만년 전에 인간과 갈라졌다. 이들과 유전자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은 Y염색체가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유전자를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Y염색체의 유전자 손실이 성염색체가 생긴 3억2,000년부터 2,900만년 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났으며 그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를 이끈 MIT 제니퍼 휴즈 박사는 "Y염색체가 사라진다는 주장과 정반대되는 결과"라고 말했다. 침팬지 Y염색체 유전자를 해독했던 박홍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자원센터장은 "Y염색체가 더 이상 퇴화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Y염색체는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이 정도의 유전자 수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연구진은 살아남기 위해 Y염색체가 안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Y염색체엔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유전자만 남았다는 얘기다. 유전자 손실이 계속 일어나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현재 Y염색체에 남은 남성 유전자는 19개. 그 중 VCY와 ZFY 유전자는 정자,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TSPY 유전자는 정자의 씨앗이 되는 정원세포를 만든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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