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과 연극의 모호한 경계 속에 담아내는 인간의 불안과 혼란. 2009년 타계한 현대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쉬는 '탄츠테아터'(dance theatre)라는 장르 파괴적인 형식으로 수많은 관객과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그의 작품을 영화 '그녀에게'에 담았다. 아일랜드 뮤지션 비요크는 바우쉬의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린 뒤 객석을 떠났다.
여기 바우쉬에 사로 잡힌 한 사람이 더 있다. 사진작가 우종덕(43). 2003년 바우쉬의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마주르카 포고'를 한국에서 본 그는 이후 바우쉬 공연이 열릴 때면 무대를 가리지 않고 날아가 카메라에 담았다. 클래식 연주자와 무대를 촬영하던 그가 무용 사진에 입문한 지 2년차일 때였다. 강렬한 이끌림이었다고 한다. "현실의 고통과 괴로움, 두려움과 불확실성, 심지어는 성적인 면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게 놀라웠어요. 마치 '현실에서는 어렵지만 무대 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해'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다른 무용 공연이 무용수의 움직임에 초점을 뒀다면, 바우쉬의 공연은 무용수의 표현과 관객의 경험이 상호작용하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대부분의 안무가가 홀로 안무를 짜는 것과 달리 바우쉬는 무용수의 경험을 끌어내는 쪽을 택하기 때문일까.
처음 공연 사진을 찍고 싶다고 메일을 보낸 우씨에게 바우쉬의 무용단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연락하는 사진가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인맥을 동원해 보기도 했던 그는 바우쉬의 뉴욕 공연이 있던 2004년 어느 날 기자단에 리허설을 공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연장에 몰래 들어가 촬영한 것을 시작으로 바우쉬의 공연을 찍기 시작했다. 1년쯤 흘러 바우쉬에게 그간 촬영한 사진을 묶은 사진집을 보냈다.
"사진이 마음에 든다며 제 두 손을 잡고 행복해하던 피나의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카리스마 넘치고 까다로운 사람이지만 그동안 제 사진을 지켜봤다며 많이 좋아졌다고 말해주어 힘이 됐죠." 그 후로 무용단이 상주하는 극장 외벽에 우씨의 사진이 걸렸고, 포스터나 자료집에도 쓰였다. 바우쉬가 내한 공연을 할 때 사용된 사진 역시 모두 우씨의 작품이다.
그림자처럼 좇아 다니던 바우쉬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일주일도 안 돼 세상을 뜨자 우씨는 "한동안 멍했다"고 했다. 장례식에 다녀와서 그간 공연을 보며 남긴 메모를 분쇄기에 넣었다. 몇몇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했지만 상업적으로 이용 당하는 듯해 거절했다. 황망한 마음을 추스른 건 지난해. 우씨는 개인전을 열어 바우쉬와의 추억을 되살렸다.
3주기(6월)인 올해는 전시는 물론 책을 통해서도 바우쉬를 추모하기로 했다. "이젠 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예민한 예술가이지만 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진지하고 따뜻했던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요." 바우쉬와 얽힌 이야기를 담은 사진 에세이집 형태의 책은 올 가을께 나올 예정이다. 그에 앞서 상반기 중에는 독일에서 두 번째 바우쉬 사진전을 연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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