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다짐한 바이기도 하여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뵈러 갔다. 친구 수연이와 선생님이 사주신 밥을 먹고 댁을 방문하여 돌로 쌓은 모양새가 특이했던 난 화분을 받아온 것이 스물한 살 봄이었으니, 얼추 15년 만의 만남.
혹여 나눌 얘기가 없을까 봐 가졌던 두근거림이야말로 기우, 선생님과 나는 예술 전반에 걸쳐 그간 서로가 서로에게 열 일 없어 풀지 않았던 관심사의 물꼬를 트느라 몹시도 말 빨라졌더랬다. 열아홉에 난 책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흔둘에 선생님은 그림과 오디오에 관심이 많으셨다지.
새벽 별보기 수업부터 자정 별보기 자율학습까지 그 긴 얼굴 마주함의 시간에다 공식적인 상담마저 잡혀 있음에도 왜 난 선생님과 대화라는 걸 나눠본 기억이 없는 걸까. 이를테면 성적 떨어졌어요, 성적 올려라, 라는 겉엣 사정의 말 말고 저 이런 책 읽어요, 나 이런 그림 샀다, 라는 속엣 사정의 말 같은 거.
물론 치열한 입시지옥에서 내 바람이 일장춘몽의 가운데 토막인 것도 잘 안다만, 나라는 우주의 원심력을 쥐고 흔드는 조종석 가운데 말이 자리함 또한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수연이의 근황을 여쭙기에 6년 전 자살 소식을 덤덤히 전하는 나. 먼저 간 제자를 가슴에 어찌 새기실지 이는 내가 경험한 바가 아니므로 나는 그저 당부하였으니 같은 늙어가는 처지라지만 일단은 선생님, 제가 좀더 오래 살아남겠습니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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