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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20억" vs "8000만원" 고미술품 감정싸움 더 깊어진 '감정의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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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20억" vs "8000만원" 고미술품 감정싸움 더 깊어진 '감정의 골'

입력
2012.02.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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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들의 음모일 뿐이다. 평생 상인으로서 고미술을 다룬 게 죄라면 죄다."

김종춘(63) 한국고미술협회(이하 고미술협회) 회장이 문화재 감정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자 협회 관계자는 24일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앞서 지난달 10일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호경)는 고미술협회 이사 김모(73)씨로부터 도굴한 문화재를 사들여 되판 혐의로 서울 경운동 협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당시 김 회장으로부터 시가 5억원에 달하는 도굴 문화재 34점을 압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협회 이사인 김씨는 도굴품 판매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또 김 회장이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가짜 미술품을 진짜로 감정해 줬다는 문화재 감정 비리 의혹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고미술협회는 "음해 세력의 공작에 검찰이 말려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 회장은 "고미술 상인들이 모여 만든 협회가 고미술업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다 보니 학계를 비롯해 시샘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고미술 전문가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고미술협회는 1971년 옛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문화재를 주로 취급하는 고미술 상인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사단법인 성격의 단체다. 현재 상인 700여명, 전문 감정인 60여명이 소속돼 있다. 협회 감정서가 문화재 값을 정하는 절대 기준이 되다 보니 협회의 고미술 작품 감정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협회 권위를 등에 업고 거짓 감정 등 비리를 저지르는 회장이 있었던 게 사실이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학계나 문화재청 감정위원 등 반대파에서 협회를 공격하면서 잡음이 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선 최근의 갈등이 이른바 '강진청자 사건'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많다. 전남 강진군 청자박물관은 2007년 5월 2점의 청자(연국모란문과형주자, 청자상감 모란문정병)를 구매하기 위해 학계 저명인사에게 청자 추천 및 감정가 책정을 의뢰했다. 정양모(78)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과 최건(62) 전 경기도자박물관 관장이 나섰고, 이들은 청자 2점 가격을 각 10억원씩 20억원으로 감정했다. 이에 강진청자박물관은 청자를 소장하고 있던 인사동 A미술관 이모(83) 회장에게 20억원을 지불하고 구매했다.

그러나 2009년 10월 성윤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학계 감정위원들이 청자 소장가로부터 뒷돈을 받고 청자 감정가를 부풀려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낭비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박물관 측은 고미술협회 김 회장에게 재감정을 맡겼고 협회는 '8,000만에서 9,000만원 사이'라고 감정하면서 협회와 학계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감사원 감사를 거쳐 검찰로 간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4월 '소장가로부터 감정가를 부풀리는 대가로 6회에 걸쳐 1억2,500만원을 받았다'며 최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하면서 정리된 듯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지난해 12월 최씨에 대해 "3,000만원 수수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인 상태다.

이에 대해 정양모 전 관장은 24일 "평생 고미술을 연구한 학자의 감정보다 상인(고미술협회)들의 말을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시 감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런 구원(舊怨)이 있는 터라 고미술협회 쪽은 서울북부지검의 고미술협회 수사를 학계 쪽의 보복 차원에서 빚어진 걸로 의심한다. 학계 전문가 중 누군가가 제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최씨와 협회 측은 강진청자 건 외에도 고구려 고분벽화 도굴 혐의 등을 두고 공방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고미술품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은 여러 측면에서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선 우리나라 고미술품 시장의 거래 규모는 연간 수백억원대 규모로 추정되지만 고미술품 전문 감정기관은 사실상 고미술협회 한 곳 정도다. 미술품 감정 방식도 주로 감정위원의 육안에 의존하고 있다. 성분 분석이나 X레이 분석 등 과학기법으로 문화재 연대를 추정하기도 하지만 제한적이다. 농산물 값도 수요공급에 따라 춤을 추는 판에 고미술은 오죽하랴. 한 고미술업계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감정관실을 통해 미술품의 진위를 가리고 가치를 평가하곤 있지만 감정 가격까지 정해주진 않기 때문에 분란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양모 전 관장이 강진청자 감정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전 관장은 "강진청자 역시 박물관 측에서 꼭 사고 싶다며 당초 제시했던 가격이 10억 원 수준이었다"며 "작품 소장가와 구매자가 합의하면 그만이지 따로 정해진 가격이 있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최경현 문화재청 감정관실 감정위원은"정부에서 국보나 보물을 지정할 때도 문화재청 소속 연구관들 사이에서 정반대 의견이 나와 무산되는 嚥理?있다"며 "가능한 한 많은 전문가들에게 감정 창구를 열어둬 일치된 지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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