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병아리들은 농장에 오자마자 절단기에 부리 끝이 무자비하게 잘려 나갑니다. 본능적으로 쪼는 버릇이 있어 비좁은 닭장에서 서로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도 수컷 보다는 나은 편입니다. 알을 낳을 수 없는 수컷 병아리는 산 채로 곧장 분쇄기로 들어가 가축 사료로 만들어 집니다."
지난해 11월 몰래 카메라로 촬영된 양계장 동영상 한 편이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자비(Mercy for Animals)'가 아이오와주(州)의 달걀생산업체인 스파보 농장에 잠입해 찍은 이 동영상엔 학대 장면들이 가득했다. 3, 4단의 공장식 닭장에 빽빽이 들어찬 닭들은 말 그대로 옴짝달싹 하기도 힘들었다. 닭을 질식사시키기 위해 비닐봉지에 던져 넣는 모습, 살아있는 닭의 다리를 줄로 묶어 공중으로 빙빙 돌리며 노는 직원들의 모습 등도 담겨 있었다.
이렇게 사육된 닭들이 낳은 계란이 매일 향하는 곳은 놀랍게도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 대표메뉴인 '맥 머핀'을 만드는데 쓰이고 있었던 것.
미 전역에서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맥도날드는 농장과 구매 계약을 취소해야 했다. 이 일로 크게 데인 맥도날드는 최근 한발 더 나갔다. 지난 15일 "좁은 '임신용 우리(gestation crate)'에서 키운 돼지고기 사용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최근 영국, 호주 등에서 임신한 돼지를 협소한 우리(60㎝x213㎝)에서 기르는 모습이 공개돼 물의를 빚자 선제 조치에 나선 것. 좁은 공간에서 자란 돼지는 요로 감염이나 뼈 조직 약화,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기의 질도 나빠지고 질병에 걸린 확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맥도날드의 대응은 다른 경쟁사에 비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버거킹과 KFC 등은 1990년 대 말부터 동물보호단체들의 항의로 여러 차례 홍역을 치렀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의 인도적 처우를 위한 사람들(People for The Ethnical Treatment Animals)'은 "KFC가 닭 공급업체들의 잔인한 도축방식을 숨기고 있다"며 2003년 미 로스앤젤레스 법원에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KFC는 납품업체들로 하여금 닭을 청결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키우고, 도살 할 때는 산 채로 목을 자르지 않도록 하는 새 지침을 마련했다. 버거킹도 몇 차례 구설수에 오른 뒤 2007년 업계 최초로 '임신용 우리에서 기른 돼지고기 구입 중단'을 선언해야 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수 년 전만해도 웰빙바람을 타고 유기농 채소, 친환경 제품 등 건강에 좋은 식품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식품 자체만이 아니라 생산 과정까지 들여다 보는 윤리적ㆍ철학적 소비 경향, 이른바 프리덤 푸드(freedom food)선호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식품을 만들거나 가공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생기는 지, 노동 착취나 동물 학대는 없는지 꼼꼼히 챙기는 것이다.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식품 가공업체나 관련 기업들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런 새 흐름은 20여 년 전 선진국에 자리잡기 시작한 이른바 '동물복지' 란 개념에서 비롯됐다. 개 고양이 등 인간의 반려동물뿐 아니라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가축들도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고통 없이 정상적으로 살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싹튼 것. 이를 위해 협소한 공간 내 밀집 사육 대신 방사를 하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첨가하지 않은 사료를 먹이고 질병의 위험 및 고통을 최소화하자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경우 1990년대 초 동물복지법을 통과시켜 조악한 우리에서 닭과 돼지의 양육 및 도살을 금하고 있다. 영국은 1994년부터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에서 동물의 복지상태에 따라 해당 로고를 제품에 표시해 인증하는 '프리덤 푸드'제도를 시행 중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더 적극적이다. 동물복지 개념을 자유 개념에 빗대 분명히 명시해 놓고 있다. ▦갈증 배고픔 영양불량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 상처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 이른바 '동물의 5대 자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흐름은 기업의 경영방식도 바꿔놓고 있다. 노동조건을 준수하고, 환경을 지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복지도 지켜내는 '윤리경영 마케팅'을 앞세우고 있는 글로벌 회사들이 늘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윤리경영이 앞으로 해외시장 진출의 필수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아직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걸음마 수준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7월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를 도입, 일정 사육기준을 충족하는 농장 축산물에 대해 별도 표시를 하겠다고 밝힌 정도다.
민간차원에서는 식품업체 풀무원이 유일하다. 풀무원은 지난 2007년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제도를 도입, 자사 브랜드와 계열사이면서 친환경 유통기업인 '올가홀푸드'에서 판매하는 육류 등 제품에 대해 OIE가 정한 동물의 5대 자유에 상응하는 복지기준을 마련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선진국 소비자들의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현지 유통업 진출을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도 윤리경영을 마케팅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업계 관계자는"선진국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점차 채식주의 확산과 함께 동물학대를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동물복지에 앞장서는 기업 이미지 메이킹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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