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결단이나 눈에 띄는 합의는 없었다. 다만 북미 양측은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체제 등장 이후 첫 탐색전을 무난하게 끝내며 지난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사망으로 중단된 대화흐름을 재개했다.
양측은 4개월 전에 열린 2차 고위급 회담에서 일정부분 이견을 좁혔다. 미국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는 비핵화 사전조치를 촉구한 반면, 북한은 분유ㆍ비스킷 등 24톤 규모의 영양지원을 30톤으로 늘리고 지원대상에 쌀을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24일 회담 후 글린 데이비스 미측 대표가 "진지하고 유익했다. 다소 진전이 있었다"고 말한 것은 양측이 큰 틀에서 문제 해결의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해석된다. 충분히 의견을 나눴고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UEP를 중단하는 단계별 조치와 수위, 식량지원의 종류와 규모에 대해 양측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은 회담을 통해 새로운 김정은 체제와의 대화기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사망 후 증폭된 북한 정권의 불안요소를 줄이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한 셈이다.
북한도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식량과 경제지원의 발판을 마련했고, 김정일 사망 이후 두 달 만에 비교적 신속하게 대미협상에 나서면서 김정은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또한 미국과 협상의 틀을 유지하며 김정은의 취약한 대내적 정통성을 보완하는 계기를 확보했다.
글린 데이비스 대표는 25일과 26일 한국과 일본을 찾아 회담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 중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대화기조가 6자회담으로 연결될 지는 불투명하다. 미국과 북한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각자의 입장을 확인했을 뿐 가시적인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후속회담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 정부도 "회담 성과를 평가하기에 이르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지속하면서 체제를 정비하는 동안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통미봉남 노선을 취할 경우 6자회담 재개 시점은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아직은 김정일 사망 전에 만들었던 대화의 틀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며 "북한의 우라늄 농축 생산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비핵화 사전조치가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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