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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지구종말이 와도 살아남겠다" 프레퍼族 '현대판 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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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지구종말이 와도 살아남겠다" 프레퍼族 '현대판 노아의 방주'

입력
2012.02.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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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다큐멘터리 전문채널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실시한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보도했다. 미국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20년 내 핵전쟁이나 자연재해로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믿느냐는 질문에 무려 61%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한 내용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테러와 자연재해에 더해 올 들어 별별 종말론까지 봇물을 이루면서 인류의 공포심이 배가된 결과다.

한 때 괴짜로 치부됐던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프레퍼(Preppersㆍ준비)족이 그들이다. 지구의 이상 신호는 프레퍼들에게 괜한 걱정이 아니라 당면한 위협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해 식량과 물을 피난처에 쌓아두고 기상천외한 생존 기술 개발에 골몰한다.

적극적 현실주의자 프레퍼

미국 애리조나주에 사는 팀 랄스턴은 차고 2개를 개조해 대피소를 만들었다. 시설 안에는 동결ㆍ건조된 비상식량, 15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치킨 통조림, 생수, AK-47 소총을 비롯한 무기류 등이 구비돼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두 아들을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사막으로 데려가 사격 연습도 시킨다. 모두 태양폭풍이 지구를 덮칠 날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랄스턴의 최종 목표는 사막 지하에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요새를 건설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망상으로 보이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다른 사람들이 건강보험에 가입하듯 나는 최후의 날에 보험을 들었다.”

이처럼 프레퍼는 단순한 음모론에 기댄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갑작스레 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위기(가령 개에 물리거나 벼락을 맞는 등)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불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몸을 보호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프레퍼도 있다. 어떤 이는 석유 고갈, 인구 폭등과 같은 실재하는 재앙을 주제로 나름의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프레퍼를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고민하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층적 재앙이 프레퍼 확산 불러

프레퍼의 역사는 꽤 뿌리깊다.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던 1929년 대공황이 시발점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미국과 구 소련간 군비경쟁이 불붙었던 60년대 초를 프레퍼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물자 부족과 경제ㆍ사회 시스템 붕괴를 염려한 일부 계층은 대피시설을 만들고 식량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70년대 오일 파동 등 에너지 위기를 거치며 심화해 80년대 초 정점을 찍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미지의 위협에 맞서 소극적 방어를 의미하는 ‘생존주의(survivalism)’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80년 미국에서 출간된 하워드 러프의 은 핵전쟁에 따른 실물 경제의 추락, 기아, 에너지 부족 사태 등 우울한 미래상을 그리며 생존주의자의 각성을 촉구했다.

생존주의는 냉전 해체로 잠시 주춤하다 99년 다시 주목을 받는다. 새 천년을 앞두고 Y2K로 불렸던 컴퓨터 전산오류(밀레니엄 버그) 파동이 불거지면서 첨단 기술도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생존주의의 현대적 개념인 프레퍼는 2001년 9ㆍ11테러를 기점으로 등장했다. 9ㆍ11 이후 테러(인도네시아 발리, 스페인 마드리드 폭탄테러 등), 자연재해(인도네시아 쓰나미,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 등), 전염병(신종플루), 경제위기(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대형 재난ㆍ재해가 숨 돌릴 틈 없이 지구촌을 강타했다. 87년 10월 미 증시의 대폭락을 예측해 유명세를 탄 제럴드 셀렌테 트렌즈연구소 소장은 “지난 10년 동안 국민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한 국가의 실패가 신 생존주의자, 즉 프레퍼가 탄생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상업주의 폐단 지적도

그러나 프레퍼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두려움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과도하게 부풀려 상업적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미국의 부동산업자는 모하비 사막에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이름 붙여진 지하 벙커를 분양했다. 병원과 영화관까지 갖춘 초호화판 시설은 분양가가 1인당 5만달러(5,630만원)나 했지만 금세 동이 났다. 미 abc방송은 “이익만 좇는 비즈니스의 속성이 지구 종말의 날을 마치 진실인양 둔갑시켰다”고 꼬집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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