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지낸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가 23일(현지시간) 버지니아 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68세. 지난해 말 췌장암으로 한달 남짓 시한부 삶 판정을 받고 투병한 지 2개월여 만이다. 강 박사의 가족은 이날 "장애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인 강 박사가 오늘 숙환인 암이 악화해 소천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죽음을 앞두고 부인과 두 아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편지를 남겨 유족들 가슴을 더욱 아리게 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는 편지에서 고인은 '50년 전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아직 기억한다'며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서울맹학교 학생이던 1962년 자원봉사 온 당시 숙명여대 1학년 석은옥을 처음 만나 결혼까지 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고인은 '이 순간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이라며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느냐.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적었다. 그는 부인을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로 부르고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고인은 두 아들에게도 '너희들이 준 사랑이 너무나 컸기에,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맘 속에 가득하기에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단다'며 이별의 아픔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신하려 했다.
고인은 죽음을 앞 둔 지난해 12월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여러분이 저로 인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길 바란다'며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웠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고인이 1월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에 평화장학금 25만달러를 기부한 것은 세상과의 마지막 이별 의식이었다.
14세 때 시력을 잃은 고인은 연세대 졸업 이후 도미해 1976년 피츠버그대에서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됐다.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에서 6년간 일하며 5,400만 미국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최근까지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재단 고문을 지냈다. 7개국어로 번역 출간된 <빛은 내 가슴에> 를 비롯해 <원동력 : 자녀 교육과 리더십> <오늘의 도전은 내일의 영광>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등 희망을 선사하는 저서를 다수 남겼다. 꿈이> 오늘의> 원동력> 빛은>
유족으로 부인 석은옥 여사와 진석(미국 이름 폴 강) 워싱턴 안과협회장, 진영(크리스토퍼 강) 백악관 선임법률고문 등 두 아들이 있다. 장례식은 내달 4일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 한인 중앙장로교회에서 추도 예배로 치러진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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