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그들의 전쟁/알버트 브룩스 지음ㆍ김진영 옮김/ 북캐슬 발행ㆍ540쪽ㆍ1만3,000원
'사람들의 수명이 너무 길어진 건 아닐까'라는 의문은 엉뚱하다 못해 당돌하다. 불사(不死)의 욕망은 유사 이래 인류의 염원이었건만 너무 사신 것 아니냐니. 하지만 이 질문이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것은 인간이 아직 불사의 꿈에 접근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90세 안팎의 한계치에 수렴해가는 수준이다.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나 보이는 것은 영아사망률이 줄어 든 것도 큰 몫을 한다. 무엇보다 암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난치병들이 불사를 향한 행진을 가로 막고 있다.
그런데 이 병들이 정복된다면(아마도 언젠가 정복될 것이다)? 물론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간의 수명은 100세를 훌쩍 넘길 것이다. 의학과 과학이 정말 우리를 불사 근처로 인도하고 있다고 실감할지도 모른다. 아, 이 얼마나 눈물 나게 기쁜 일일까. 정말?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인 알버트 브룩스의 <2030년 그들의 전쟁>은 지금부터 약 20년 뒤 암과 알츠하이머가 정복된 미국을 그린 미래 소설이다. 수명은 늘었고 당연히 돈 많은 노인들은 그런 세상을 반기고 즐긴다. 그러나 사회 전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사회보장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미국은 이미 퇴직연령을 73세로 연장했다. 의료보험료는 최대한 올리고 보장 범위는 최소화했지만 그래도 의료비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재정은 파탄 상태다. 빚 갚는 건 고사하고 이자라도 내고, 의료보장비를 감당하기 위해 갈수록 늘어가는 세금 부담에 온 국민이 짓눌린다. 문제는 같은 세금을 내더라도 고령자들은 그 혜택을 보지만 젊은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세대간에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고 만다.
2026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데저트 근처에서 카지노로 가던 버스 안에서 12명이 총에 맞아 9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한다. 버스에는 30명이 타고 있었지만 40세가 안 된 젊은 사람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총을 쏜 사람은 26세 남성. 조사 결과 그는 어느 하원의원에게 '자신은 평생 한 번 병원에 간 적도 없는데 어마어마한 의료보험료를 왜 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노에 찬 편지를 보냈다. 직장에서 강등되고 월급도 깎여 할머니 치료비를 낼 수 없다는 내용으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도 있었다. 피터팬에 집착해 '늙고 낡은 것은 무엇이든 혐오'하는 인간이었다. 비슷한 사건이 2년 뒤 애리조나주의 퇴직자 아파트 주변에서 또 났다. 샌디에이고의 은퇴자 지구에서는 자살폭탄이 터졌다.
소설 속 맥스나 캐시처럼 지극히 평범한 20, 30대들이 이 같은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이런저런 단체를 결성한다. "우린 모두 단 한 가지의 이유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빌어먹을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 청년들 따윈 거들떠도 안 본다는 거죠. 노땅들이 떠넘겨준 빚이나 갚으며 살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때가 됐습니다. 더 이상 빚 갚는 인생은 싫다 이겁니다." 집을 팔았는데도 남아 있는 주택론을 갚아야 하는 것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치료비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젊은이들은 테러를 감행해 대통령에게 투표권을 70세로 제한해야 모든 세대가 공평한 권리를 가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설은 이밖에도 첫 유대계 대통령 번스타인, 암 치료법을 발견해 벼락부자가 된 뮐러, 규모 9.1이라는 미국 역사상 최대 지진을 만나 집을 잃어버린 80세 노인 브래드, 중국에서 성공한 의료보건서비스로 미국에 진출해 결국 미국 대통령까지 되는 셴 리 등 다양한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일화들이 얽히고설킨다.
영화 '드라이브'로 지난달 전미영화비평가협회가 주는 남우조연상을 받은 브룩스는 지난해 이 책을 낸 뒤 여러 인터뷰에서 소설이 아니라 "뉴스 같은 이야기"로 읽어 달라고 말했다. 의료보장비를 둘러싼 엄청난 사회적인 부담을 강조하고, 지진 재건 참여 후 중국이 LA 세금의 절반을 가져간다는 설정이나 중국계 미국 대통령의 탄생 등 소설의 중심 소재가 다분히 보수 코드라는 점이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 상상력 넘치는 픽션은 김정일이 죽고 북한이 2013년에 남한에 흡수된다는 소설 속 한 대목처럼, 다소 성급할진 몰라도 충분히 예언적인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