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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도세자는 반역죄로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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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도세자는 반역죄로 처형됐다"

입력
2012.02.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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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간/ 정병설 지음/ 문학동네ㆍ428쪽ㆍ 2만원

때리고 찢고 지지고…. 사극 속 추국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저 정도 잔인성은 있어야 권력을 쥐는 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선시대 왕권을 둘러싼 피바람은 대상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형제끼리 죽이는 일은 다반사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지만 '종묘사직'이란 이름으로 곧잘 무마되곤 했다. 그 가운데도 참극의 1순위를 꼽자면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이 아닐까.

수많은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서 다뤄졌지만 정작 사도세자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학계에서는 사도세자가 미쳐서 영조가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광증설과 사도세자가 집권층인 노론 세력에 맞서다 억울하게 죽었다는 당쟁희생설이 제기돼왔다. 신간 <권력과 인간> 의 저자 정병설 서울대 교수는 사도세자가 영조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영조가 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한다.

정 교수가 반역죄 처형설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 이다. 한중록에는 뒤주에 갇히기 이틀 전 밤 창덕궁에 거주하던 세자가 수구문을 통해 영조가 있는 경희궁으로 가려고 했으며, 그즈음 세자가 "칼을 차고 가서 어떻게 해버리고 오고 싶다"는 극언을 하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 교수는 사도세자 사건을 '모년사(某年事, 아무 해의 일)', 뒤주를 '일물(一物, 어떤 물건)'이라 했던 조선시대 왕실 어법으로 미뤄 한중록의 이런 기술이 세자의 반역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영조와 세자의 사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꼬인 것은 아니다. 영조 나이 마흔 둘에 얻은 귀한 아들은 돌도 되기 전에 세자로 책봉돼 영조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엄격하고 부지런하고 날랜 영조에게 밥 먹기 좋아하고 책 읽기 싫어한 뚱보 아이가 눈에 찰 리 없었다. 성격적으로 아버지와 맞지 않았던 사도세자는 영조 앞에서 움츠러들었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정 교수는 '누구라도 이 정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며 사도세자 묘지명, 사도세자가 장인에게 보낸 편지, 정조가 사돈 김조순에게 전한 말 등을 '사도세자의 광증을 보여주는 사료들'로 제시한다.

정 교수는 반역죄 처형설의 또 다른 근거로 영조가 세자를 죽이기 직전 내린 '폐세자반교'를 든다. 세자 자리를 폐한다는 명령을 담은 이 문서는 공식 기록인 승정원일기나 영조실록에 실리지 않고, 개인 문집인 <대천록> , <현고기> , <모년기사> 등에 전해져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폐세자반교에는 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 아침, 사도세자의 생모 선희궁이 영조에게 전했다는 말이 나온다. "세자가 내관, 내인, 하인 등 백여 명을 죽였으며, 저도 죽이려 했다. 비록 제 몸이야 괜찮지만 임금의 위험이 숨 쉴 사이에 있으니 사실을 아뢸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또 세자가 뒤주 안에서 거의 죽음에 이른 것을 보고 영조가 거소로 돌아가면서 개선가를 연주하게 했다는 <이재난고> 의 기록도 반역죄 처형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한다.

학술적 내용을 다루지만, 책은 한편의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사도세자를 둘러싼 인물들의 내력을 밝힌 1부, 사도세자가 영조의 총애를 받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극적 상황을 소개한 2부, 세자 사후 정조 등극으로 역사 기술이 왜곡되는 과정을 소개한 3부로 나뉘어 18세기 영정조 시대 한 세기 동안의 궁중 역사를 기술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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