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딩동,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성우 김상현 언니가 시를 낭독하니 자기 전에 한번 들어보라는 전갈이었다. 냅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엉겅퀴' 구절구절이 언니의 힘 있는 저음에 실려 내 귓속을 타고 심장까지 순식간에 타전되는 듯했다.
번역된 시라지만 조사 하나 쉼표 하나마다 그에 걸맞은 무게를 실어 발음하니 알다 가도 모를 엉겅퀴가 모르다가도 알아버린 엉겅퀴처럼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왜 사는지 모르는 채로 내일을 살아야 하는 버거움에 간혹 한숨이 나다가도 어떤 환기에 코끝이 짠해질 때, 그렇게 삶을 되새기게 만들어주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책이지 싶다.
만만한 게 책이고 흔하디 흔한 게 책이라지만 영상매체 중에 책을 말하는 프로그램이 과연 몇 개나 되려나. 물론 이해는 한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시작했다 끝나는 예능과는 다르게 책은 좀 골치가 아프니까. 그래서들 채널 돌리기에 급급하니까.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몇몇의 소수를 아예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언제쯤 우리는 문화의 값어치를 매서운 눈으로 알아채는, 그런 매의 눈을 가진 문화적인 관료를 만날 수 있으려나. 몇 번의 출연으로 애정이 깊었던 KBS '낭독의 발견'이 폐지되었다니 짜증나서 그런다. 한때 방송작가로 밥벌이를 삼았던 EBS '세계음악기행'을 더는 들을 수 없다니 안타까워 이런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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