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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르베' 아빠가 죽은 날,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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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르베' 아빠가 죽은 날,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입력
2012.02.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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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나는 어떻게 투명인간이 되었나)/ 에르베 부샤르 글ㆍ자니스 나도 그림ㆍ배블링 북스 옮김/ 산하 발행ㆍ164쪽ㆍ9,800원

올해 초 개봉한 유럽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은 영문도 모른 채 보육원에 맡겨진다.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는 시릴의 소망은 함께 살던 아버지를 만나는 것과 잃어버린 자전거를 되찾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사실을 알게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을 벗어나겠다는 듯, 다시 찾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는 것뿐.

여기, 깊은 상실감에 빠진 또 한 명의 소년 아르베가 있다. 봄이 오는 길목, 갑작스럽게 아빠를 여읜 소년은 관 속에 누운 아빠를 보는 순간 투명인간이 되기로 한다. 분신처럼 여기던 흑백영화 주인공 스콧 캐리가 몸집이 점차 줄어 작은 점이 된 것처럼.

그래픽 노블(그림 소설) '아르베'는 불과 이틀 사이에 아르베에게 일어난 일들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첫 장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드넓은 평원 그림으로 시작해 집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을 지나 도로 위에서 자전거 타는 아르베의 모습까지. 6컷에 걸쳐 영상처럼 줌인하는 도입부는 애니메이션 같다.

여느 해와 다름없던 초봄 아르베의 아빠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다. 그날 밤 아르베는 언제가 TV에서 본 스콧 캐리를 떠올린다. 이상한 빛에 쏘여 몸집이 점점 줄어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된 스콧은 그러나 슬퍼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동생보다도 키가 작은 아르베가 스콧에게서 얻은 위안은 아빠의 죽음으로 '작음'에서 '용기'로 옮아간다.

다음날 장례식장에서 아르베는 작은 키 때문에 관 속의 아빠 얼굴을 볼 수 없다. 사람들이 본 아빠를 상상하고 그대로 간직하려 하지만 이모부는 아르베를 들어 올려 잠든 아빠를 보여준다. 제 눈으로 현실과 마주한 순간, 소년은 몸이 옅어지며 투명한 존재가 된다. 저자 에르베 부샤르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투명인간이 되듯 자신의 존재를 줄여가며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빠는 언젠가 소년에게 말했다. 햇살과 눈으로 세상이 하얗게 빛나는 것이 첫 번째 봄이라면, 풀과 나뭇잎이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것이 두 번째 봄이라고. 눈 녹은 땅의 진흙으로 장화가 무거워져 발걸음이 느려지는 계절이 첫 번째 봄인 소년에게 과연 두 번째 봄은 어떻게 정의될까. 글과 그림 사이의 여백만큼이나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아르베'의 소설과 그림은 각 부문에서 2009년 캐나다 최고 권위의 캐나다연방총독상을 받았다. 다 읽는데 1시간도 안 걸리지만 상당히 철학적이고 시적인 내용이라 자녀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길 권한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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