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CJ의 갈등은 애초 삼성그룹 후계자로 장남 이맹희씨가 배제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앙금의 뿌리는 깊고 멀다. 하지만 이맹희씨의 재산반환소송에 이어 삼성의 이재현 회장 미행과 관련해 CJ그룹이 사실상 삼성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양 그룹의 갈등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사건의 전말
CJ측 주장에 따르면 이재현 회장의 운전기사는 지난 16일쯤부터 출퇴근 시간에 누군가 이 회장 차를 따라다닌다는 느낌을 받았다. CJ의 CCTV에도 41허XX29 번호판을 단 검은색 오피러스 차량이 17일 오전 8시쯤 이재현 회장의 자택 인근을 배회하는 모습이 처음 목격됐다.
CJ 측은 "이재현 회장은 주말 약속을 나가는 과정에서도 오피러스 차량이 따라붙자 미행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집 앞 CCTV를 통해 이 차량을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차량은 20일 오전 8시와 오후 12시쯤에도 자택 앞에서 정문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이 잡혔고, 21일 오후 3시55분쯤에는 오피러스를 몰던 운전자가 렌터카 업체를 통해 차량을 41허XX93 검은색 그랜저로 바꾸는 모습이 파악됐다.
이 운전자는 그랜저로 차를 바꾼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이날 오후 4시 8분쯤 또다시 나타났다. 미행임을 확신한 이재현 회장의 비서팀 직원들은 오후 7시30분쯤 검은색 그랜저 차량을 막아 섰고, 이 과정에서 다리를 살짝 부딪히자 경찰에 신고했다.
미행 당사자인 김모(삼성물산 소속)씨는 미행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김씨는 신라호텔 인근 부지 활용을 검토하기 위해 장충동 일대를 돌다가 21일 접촉 사고가 발생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감사팀 소속인 김씨는 그 일대 부지 활용에 대해 올린 사업계획서의 타당성 여부를 조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CJ관계자는 "보통 접촉사고가 있으면 운전자가 나와 명함을 교환하고 보험사를 부르는 것이 상식인데 김씨는 이를 거부했다"면서 "1995년 CCTV 감시사건을 생각하면 미행은 새로울 것도 없다"고 말했다.
CJ는 미행이 시작된 게 이건희 삼성전자회장에 대한 이맹희씨의 주식반환소송(14일) 이틀 뒤부터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없던 차량이 갑자기 이재현 회장 집 부근에 나타난 건 분명 소송에 따른 미행목적이었다는 주장이다.
남는 의문점
양측의 진실공방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행'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이지만, 이번 사건에서 궁금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미행치고는 너무 허술하다는 것. 삼성 정도라면, 또 치밀한 각본에 의한 미행을 할 작정이었다면, 얼마든지 '전문가'를 동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계열사 소속 일반직원이 ▦누가 봐도 티가 날 정도로 차를 타고 배회했다는 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미행의 이유도 석연치 않다. 삼성관계자도 "이재현 회장을 미행해서 도대체 우리가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때문에 재계에선 '조직적 미행' 보다는 단순 '동향파악'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예기치 못한 소송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삼성 직원이) 내부적 정보보고나 동선파악 차원에서 어수룩하게 나섰다가 들통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가지 분명한 건 미행이든, 단순 동향체크든 삼성은 이맹희씨 소송 배경에 이재현 회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CJ측은 애초 이 소송이 불거졌을 때 "이맹희씨가 개인적으로 결정한 것이며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버지가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을 낸 걸 아들이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삼성은 물론 재계의 일반적 시각이었다.
또 "경영권을 원상복구 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건희 회장에게 최대한 타격을 주려는 CJ의 시도"란 해석도 나왔다.
●1995년 CCTV 사건
제일제당(현 CJ그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하는 과정에서 1995년 3월 서울 장충동 이재현 회장의 바로 옆집인 이건희 회장 자택 3층 옥상에 CCTV가 설치된 사건. CCTV가 이재현 회장 자택 정문을 향하고 있어, 이 회장 집에 드나드는 인물을 모두 촬영할 수 있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를 알게 된 이재현 회장이 강하게 항
의하자 삼성이 급히 철거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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