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S중 도덕과 A교사는 며칠 전 학교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2학년에 주당 5시간 배정된 도덕수업 중 1시간을 빼 학생들에게 축구ㆍ농구팀 등을 만들어 지도하는'학교스포츠클럽'수업을 하라는 것. 영문을 알 수 없어 '전공도 아닌데'라고 따졌지만 학교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전 학년 체육을 주 4시간으로 확대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따라 당장 학년별로 체육 1~2시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미 2월 중순 시간표가 완성돼 기존 수업을 빼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A교사는 "안 그래도 집중이수제로 중 1~3학년에 나눠서 가르치던 도덕을 중2때 몰아 주 5시간씩 가르쳤는데, 이제 4시간 안에 쫓겨서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에 스포츠를 하라니 무슨 학교폭력 대책이 이렇게 몰상식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육당국의 갑작스런 체육수업 확대방침 때문에 전국 중학교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교과부는 이달 6일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서 '2학기부터 중학교 전 학년에 걸쳐 체육을 주당 4시간씩 가르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17일에는 일정을 당겨 16개 시도교육청에 '신학기에 학교스포츠클럽 활동 등 체육을 4시간씩 편성하도록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이미 2월 중순 시간표 배정과 교원 인사를 마친 중학교들이 부랴부랴 대안을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과부가 체육수업 확대방법으로 ▦기존 수업 20%범위 감축 ▦창의적체험활동(창체) 시간 활용 ▦수업시수 증가 등을 내놓고, 체육강사를 1명씩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세가지 방안 모두 부작용을 안고 있다. 주 3시간씩 배정된 창체(동아리, 봉사, 자치활동) 시간에 체육을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D중의 지리교사 B씨는 "원래 시간표를 그냥 두고 체육을 늘리려면 (총 40시간을 메울) 교사가 2명은 더 필요한데 1명만 추가 지원되니 결국 창체 시간을 없애는 것"이라며 "의욕적으로 독서토론논술반을 준비했는데 문외한인 나보고 체육을 가르치란다"고 탄식했다. 졸지에 토론, 문화, 예술, 봉사 등을 다양하게 경험해야 할 창체 시간에 전교생이 체육 수업을 하게 된 셈이다.
장소도 문제다. H중 교감은 "보통 같은 날 모든 학년이 창체를 3시간씩 하는데 이 시간을 뺀다고 해도 전교생 1,500명이 동시에 운동장에서 체육을 해야 하고 강사도 최소 30명이 필요하다"며 "굳이 하라면 교실에서 담임들이 농구 이론이라도 가르쳐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주변 시설을 활용하고 싶어도 반경 1㎞ 내에 중학교만 6개라 불가능하다. 그는 "27년 교직생활에 교과과정을 이렇게 졸속으로 바꾸는 건 처음 본다"고 개탄했다.
일선에서 혼란이 야기되자 경기ㆍ강원ㆍ광주ㆍ전북교육청은 체육 수업시수 확대 논의를 일시 보류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21일 일시 보류를 지시했던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우선 여건이 되는 학교만 체육을 늘리고, 나머지 학교는 학생이 자율적으로 참가하는 방과 후 학교 시간에 스포츠클럽 교육을 강화하라"는 방침을 밝혔다. 전교조도 23일 성명을 내고 강제시행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교과부는 여전히 정규 교육과정 안에 체육 4시간을 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갈등도 예상된다. 교과부 관계자는 "각 학교가 가급적 강사를 추가 선발하는 방법으로 정부 지침을 따르되 강사선발이 촉박한 학교는 강사를 구하는 대로 3월 2주차에 수업을 시작하면 된다"며 "추후 관련 예산지원 확대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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