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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근혜가 박근혜다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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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근혜가 박근혜다울 때

입력
2012.02.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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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을 때 들은 얘기다. 대체로 일본 여성은 화장할 때 외모에서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데 치중하는 반면에 한국 여성은 단점을 커버하는 데 주력한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장점을 부각시키는 화장 기법에 점수가 더 주어지게 마련이다.

어쭙잖은 풍설을 갖고 외모주의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자신의 주무기를 앞세운 전략이 상대적으로 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지난해 말 한나라당의 위기 상황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 보수 쪽 지지층은 적잖은 기대를 걸었다. 그에게 무슨 신비한 초능력이 있다고 여권 부활의 기대를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기력하게 스러지게 하진 않을 것이란 막연한 환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시작부터 빗나갔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의 역주행 탓이다.

정강에 '보수'란 단어가 있어서, 현정부와 단절하지 못해서, 포퓰리즘 복지 정책을 마구 내놓지 못해서 여권 전체가 위기를 맞은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법을 여기서 찾으려 했다. 이로 인해 박 위원장에 대한 기대는 실망을 넘어 냉소로 이어졌다.

20여년 전 노태우 대통령은 집권 후 '5공 단절'을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결국 자신만의 메아리로 끝났다. 역사가들은 5공에서 잉태된 또 하나의 군부 정권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새누리당이 현정부와 갈라선다고 선언했다고 치자. 국민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이명박과 박근혜를 전혀 다른 개체로 봐 줄 것 같은가 말이다.

복지 경쟁도 그렇다. 서울시의 전면 무상 급식 정책을 반대하며 표를 달라고 할 때가 불과 넉 달 전 일이다. 그런데 요즘엔 야당을 넘어설 정도로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우매한 가면극이다.

초반 실착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지지층이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에게 바란 것은 제대로 된 가치의 실현이지, 어설픈 '야당 흉내내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그 결과는 어땠는가. 그간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의 지지율은 정체와 하락을 반복했다. 민주통합당은 지지율 1위 정당이 됐고, 덩달아 문재인 상임고문도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그룹에 합류했다. 새누리당 내부의 무소신 행보에 신물이 난 집토끼들이 하나 둘 대문 밖으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위기 의식을 절감했는지, 애초부터 당을 재정비한 뒤 본격적인 색채 띄우기에 나서겠다는 단계별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가 이제서야 적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 위원장이 최근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세력에게는 나라를 못 맡기겠다"면서 FTA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더니, "원칙 없이 말을 바꾸는 야권이 오히려 심판 대상"이라고 전선도 명확히 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 요구는 해답이 아니며 자연스런 차별화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정하다 보면 인위적으로 선을 긋지 않아도 국민이 알아서 평가하게 된다는 논리다. 또 보수 계열 신생 정당인 '국민생각'의 박세일 대표를 만나서는 힘을 합치자는 말도 건넸다.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충청 지역 선거 연대를 위해 물밑 조율에도 나서고 있다.

박 위원장이 오랜만에 자기 정치를 재개하고 있는 셈이다. 어울리지 않는 야당 행세에서 벗어나 이제서야 몸에 맞는 갑옷과 투구를 꺼내 입은 듯하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 새누리당 행태가 탐탁지 않아 정치권에 대해 아예 입과 귀를 닫았던 사람들도 '뭔 구경거리가 생겼나' 하면서 다시 여의도에 슬며시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집토끼의 귀환이다.

'박근혜'를 떠올릴 때 공통적으로 연상하는 몇 가지 가치가 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그것이 그가 갖고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란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박 위원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의 원천도 여기에 있다. 어설픈 가면극으로는 승산이 없다. 애들 말로 '쌩얼'(생얼굴)로 진짜배기 승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질 때 지더라도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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