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후보 시절, "아픈 국민이 병원에 제대로 못가는 나라, 국민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국민건강과 국가의 역할에 관한 최고의 명언이라 하겠다. 우리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제36조 제3항에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헌법정신의 구현을 위해 보건의료기본법과 영역별 보건의료 법률들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 형 국가의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의 공공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다수가 건강불안과 의료비 불안을 느끼고, 심지어는 소득계층 간 건강수준과 의료이용의 양극화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가의 역할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국민건강 보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인 '국민의료비 지출 중 공공지출의 비율'이 55%로 매우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미국과 멕시코(45%) 다음으로 낮아 28위이다. OECD 평균인 73%에 비하면 18%포인트나 낮다. 유럽 선진국들은 대개 80%를 웃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 수준에 상응하는 국민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려면 국가의 역할을 지금보다 34% 정도 더 확대해야 한다. 국제적 기준을 따라잡으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첫째,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병원 수의 93%, 병상 수의 85%가 민간소유이다. 우리나라처럼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이 10% 수준인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선진국들은 대개 60~80%를 웃돈다. 의료서비스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의료기관이 원하는 대로 의료수요를 창출할 개연성이 큰데, 민간의료기관의 강력한 이윤추구 동기는 과잉진료와 비효율적 자원배분으로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이에 대한 해법은 공공의료기관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현재 10%인 공공의료의 비중을 30% 정도까지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2.7%이다. 이는 전체 진료비의 62.7%를 국민건강보험이 지급하고 나머지를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의료보험 통합 이전에는 50% 수준이었으나, 2000년 국민건강보험 창설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2007년에는 64.6%까지 도달했다가 현 정부 들어 다시 낮아졌다. 그리고 최근 수년 동안 민간의료보험이 크게 성장하였다. 이는 OECD 평균에 비해 20%포인트나 낮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에 불안을 느낀 우리네 가계의 80%가 1개 이상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서민가계의 부담은 늘어났고, 보험회사들은 큰돈을 벌었다. 이게 다 국가의 역할이 부실해서 생긴 일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이다. 현재 국민 1인당 국민건강보험료는 월 3만3,000원인데 비해, 민간의료보험료로는 약 10만원을 내고 있다. 건강보험료를 지금 보다 34% 더 내면, 우리는 이 돈으로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급여화하고, 병원 입원의료비의 90%와 간병비용까지 보장하고, '연간 진료비 100만원 상한제'를 실시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실상 의료비 불안이 해소되므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어지고, 우리네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게 된다. 국가의 역할 증대, 즉 의료공공성의 획기적 강화는 사회연대의 제고와 함께 서민가계에 경제적 이득을 안겨준다. 시장실패 영역인 의료서비스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커질수록 형평성과 거시적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복지국가가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확산되고 있다. 의료공공성의 확충과 '건강보험 하나로'는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의 핵심적 사안이자 목표다. 이번 총선과정을 통해 정치사회적으로 더욱 공론화되고, 이후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통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이유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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