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얄팍하고 저열하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실무근으로 판명 나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한 것은 기만행위다. 진정 책임을 통감했다면, 임기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의원직을 사퇴할 게 아니라 정계를 은퇴했어야 했다. 박씨의 병무기록(MRI)을 불법적으로 획득하고, 근거 없이 타인의 MRI로 면제를 받았다고 주장, 박 시장 가족을 처참하게 만들어놓고 다 끝난 의원직을 던진 것은 가증스러운 면피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서울대 법대, 미 하버드대 법학석사, 사법고시 합격, 국회의원 당선 등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가 이 정도 수준의 정치밖에 할 수 없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치가 보편화해 있다는 점이다.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도 남이 하면 몹쓸 짓이지만, 자신이 하면 표현의 자유로 둔갑한다. 비리 의혹도 자신이 관련되면 실수였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상대방이 연루되면 엄중히 다뤄야 한다고 외친다.
민주통합당은 박 시장 아들의 병역논란에서는 허위사실 유포자 단죄와 피해자의 명예에 중점을 두었지만, 불과 몇 달 전에는 표현의 자유에 힘을 실은 ‘정봉주법’을 발의한 바 있다. 물론 정봉주 전 의원이 제기한 BBK사건의 경우 아직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정서가 국민들 사이에도 깔려 있지만, 그렇다고 정반대로 입장이 돌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선 때 나경원 후보가 ‘1억원 피부숍’ 논란으로 피해를 보자, 허위사실 공표나 후보자 비방죄에 벌금형을 없애고 ‘1년 이상의 징역’으로 하한을 정한 ‘나경원법’을 발의하더니, 이번 논란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정당만 그런 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회견에서 주변 비리에 대해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는 야당 지도자들의 과거 지지 발언을 제시하며 역공을 가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초청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거꾸로 이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개입이라고 비난하면서 한미FTA 입장 변화에 대해선 “재협상으로 이익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10개 독소조항 중 대부분이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됐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다.
대통령, 야당 대표, 여야 정당 모두 무슨 일이든 자신에 이롭게 해석하고 행동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정치에 빠져 있다. 이런 정치를 끝내는 길은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뿐이다. 자신에 관대하고 타인에 엄격한 정치인에게는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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