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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편지 한 통 3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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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편지 한 통 350원

입력
2012.02.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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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이라는 말이 좋다. 중국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ㆍ768~830)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추사(秋思)> 의 마지막 행이다. 復恐匆匆説不盡(부공총총설부진) 行人臨發又開封으로 '서둘러 쓰느라 말을 다 못한 듯하여, 길 떠나기 전에 또 열어 보네'라는 의미다. 성춘향이 이몽룡에게 보낸 편지를 갖고 가던 방자를 우연히 만난 행인(이몽룡)이 대신 전하겠다며 인용한 대목이다(춘향전 중에서). '글쟁이' 들이 출고하기 직전 되뇌는 말이기도 하다.

■ 23일자 한국일보 16면에 '사소해 보이지만 즐거운 기사'가 실렸다. 편지 한 통(20g 전후)을 보내는 비용이 250원인데, 얼마까지 인상되더라도 계속 이용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전문가의 논문이었다. 평균 도시민은 92원, 시골주민은 64원이라고 대답했다. 37~25% 인상하더라도 좋다는 대답이니 현행 270원(2011년 10월 인상)을 기준하면 370~338원쯤 되는 셈이다. 내일부터 서울의 대중교통요금이 15% 정도 인상된다고 난리쳤던 일을 생각하면 퍽 관대한 반응이다.

■ 서울에 우체통이 아직도 2,800개 정도 있다는 사실은 의외다. 전국 2만2,000여 개의 우체통은 아무리 벽지라도 매일 한 번씩 우편집배원이 반드시 다녀가고 있다. 얼마 전 TV에서 도심의 우체통 내부를 촬영해 보여준 적이 있었다.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것은 편지가 아니었다. 담배꽁초 음료수병 휴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담뱃재와 음식물 찌꺼기 등으로 더럽혀진 우편물을 깨끗이 닦는 일이 집배원들의 또 다른 주요 업무가 돼버렸다.

■ 거의 공짜로 순식간에 의사를 전달할 수단이 널려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우편료를 30% 이상 인상해도 계속 편지를 쓰겠다는 마음이 참으로 흐뭇하다.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수십 건보다 한 장의 편지가 전달하는 감동과 의미는 써보고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리가 없다. 도심의 천덕꾸러기처럼 구석에 내몰려 있는 빨간 우체통에 정다운 눈길을 보내자. '우체통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그렇게 설렘을 전해준 사람이었느냐.'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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